그러나 넘치는 아젠다(의제) 속에 가려있는 뇌관이 있다. 지난 정부가 슬쩍 뒤로 미뤄놓은 공무원연금 개혁이다. 이데일리는 새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로 이 `뇌관제거`를 제시하고 문제점과 해법을 총 4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註]
“연내에 공무원연금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2006년7월6일. 이용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
“의원 입법으로라도 공무원연금을 개혁하겠다” (2006년12월28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의 8대 비밀`이 네티즌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지며 연금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던 지난 2004년부터 연금 개혁은 참여정부의 핵심과제 중의 하나로 급부상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허점 개선을 약속하며 들불처럼 번지는 연금불신을 진화하기에 진땀을 빼야 했다. 전 국민이 대상인 국민연금 개혁 작업에 가속도가 붙고 이어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이른바 특수직역연금 개혁에 대한 청사진도 속속 제시됐다.
지난 2006년만해도 재정이 만신창이로 빠져든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대단했다. 그러나 전의(戰意)를 불태우듯 공무원 연금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그야말로 `국민 위안용`에 불과했음이 사실로 드러났다.
참여정부는 입으로만 개혁을 외치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의 마지막 기회인 지난해 정기국회에는 상정도 못하고 `말로만 떠들다` 개혁을 차기 정부로 떠넘겼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물거품이 된 것은 국정리더십의 무관심 탓이 크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연두기자회견에서 “지금 국민연금도 개혁하지 않고 공무원연금부터 먼저 들고 왜 하지 않냐는 건데, 저는 국민연금이 먼저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민연금 개혁이 먼저`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말하자면 공무원연금 개혁은 후(後)순위라는 지시였다. 그러자 지난해 1월 어렵게 마련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빛이 바래고 공무원 노조의 반발만 키우는 꼴이 됐다.
노 대통령에 의해 선순위로 지목된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지금 내는 대로 그대로 내고 덜 받는`식으로 개혁이 됐다. 청와대는 지난해 9월 “7월에 국회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그에 준하는 공무원 연금개혁안을 연말까지 만들겠다”고 했으나 이마저도 말뿐이었다.
참여정부는 욕 먹을 게 뻔한 공무원연금 개혁은 미적미적 미룬 채 지난해 12월에는 한 술 더 떠 6급 이하 공무원 25만명의 정년을 3년씩이나 연장해줬다.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면 공무원들에게 선심 쓰기 좋은 정원늘리기나 - 참여정부내 늘어난 공무원 수만 9만7000명에 육박한다 – 정년을 연장해 준 것은 치명적인 실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금보험팀장은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할 때 노조와의 협상용으로 제시할 수 있는 정년연장 카드를 너무도 손쉽게 쓰는 우(遇)를 범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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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비정상적으로 적게 내고 후하게 주는`식으로 짜여진 연금구조로 인해 국가재정이 감당해야 할 적자보전액이 이미 정상 수위를 넘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공무원연금은 지난 1993년부터 적자를 보이고 있으며, 지난 2001년부터는 이 적자를 국민이 낸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다. 공무원연금과 같이 움직이는 군인연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군인연금은 이미 지난 1973년 적자상태로 돌아섰다.
올해 국민들이 공무원연금에 보태줘야 할 돈만 1조원이 넘고 2010년에 가면 2조1047억원, 2050년에 가면 49조9047억원에 달해 지난해 적자보전액 9725억원의 51배나 될 것이란 관측이다. 다른 곳도 아닌 정부(기획예산처)의 추정이다. 공적 연금 전체적으로는 적자가 2050년께 무려 178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집계됐다.
◇ 수술 못하면 세대간 전쟁 난다
나머지 하나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소득의 9%(개인 4.5%)를 내고 40년을 부어야 평균소득의 50%(개정전 기준)를 받지만 공무원연금은 소득의 17%(개인 8.5%)를 33년이상 부으면 월급이 가장 많은 퇴직전 3년 연봉의 76%까지를 사망할 때까지 받을 수 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의 보수와 퇴직금이 민간보다 적지만 연금을 포함한 생애소득 개념으로는 민간기업 직장인들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두 연금간 형평성에 문제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과거에는 19살에 공무원이 돼 20년 근무한 뒤 39살에 퇴직하더라도 완전연금을 줬다"며 "지금은 55세 이상이 지나야 연금수급권이 발생하지만 아직도 공무원연금은 타가는 데 비해 내는 돈이 적다"고 말해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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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주장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금이 퇴직공무원들의 연금 적자 보전용으로 들어가고, 정작 자신들이 받는 연금은 용돈 수준도 안되는 현실을 수긍할 만한 국민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만신창이 공무원연금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국가재정에 엄청난 재앙이 초래될 뿐 아니라 나중에 부담 여부를 둘러싸고 연금 주체간, 세대간 전쟁도 일어나지 않으란 법이 없다.
우즈하시 타케후미(埋橋孝文)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학부 교수는 "일본의 경우 2004년 연금을 많이 깎는 개혁을 단행했지만 이것도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고령화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의 경우 더 늦기전에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타케후미 교수의 지적대로 애초부터 잘못 짜여진 연금 구조를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공무원 연금은 환골탈태해야 한다. 깨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살고, 아들, 손자, 후세대도 잘살 수 있다. 아울러 공무원 자신들의 노후도 보장될 수 있다.
[취재 지원 = 한국언론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