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전기 팔아 전기요금 절약? 탁상공론 논란 산업부

대통령 보고 '프로슈머' 정책, 업계선 "실효성 없는 세금낭비"
복잡한 등록·매매요건, '판매독점' 깬다면서 한전이 사업운영
소송 중인 누진 요금제 개편하면 사업 '유명무실'
전문가들 "신산업 키우려면 전기요금 개편부터"
  • 등록 2016-03-27 오후 4:21:16

    수정 2016-03-28 오전 9:07:23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이웃 간에 전기를 사고 파는 1조원대 신산업으로 대통령에 보고된 에너지정책이 혈세 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7일 대통령 주재 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프로슈머’ 에너지 정책을 신산업 투자규제 개선 리스트에 포함해 보고했다. 프로슈머(prosumer)는 전기를 소비하면서 태양광 시설 등으로 전기를 생산해 이웃에 파는 생산형 소비자를 뜻한다.

산업부는 지난 10일 수원·홍천 등 세 가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했고 내년까지 3000가구로 늘릴 계획이다. 사업 잠재시장 규모가 120만 가구(누진제 5단계 이상),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산업부는 추산했다.

그러나 시범사업을 검증해 온 전문가들은 “실효성 없는 탁상공론 정책으로 세금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우선 등록 요건이 까다롭고 사고 파는 과정이 복잡하다. 프로슈머 사업자로 등록하려면 태양광 시설 등을 보유해야 하고 주변에 누진제 5단계(401~500kWh, 월평균 요금 약 10만원) 이상 쓰는 소비자가 있어야 한다. 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도시에서 개인 간에 이런 복잡한 전기 매매를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전력판매 시장 독점을 바꾸겠다는 이번 사업을 사실상 한전이 운영하는 점도 모순으로 지적된다. 이웃 간 거래를 하려면 ‘중개자’로 반드시 한전을 거쳐야 한다. 필요한 설비 설치, 거래자 관리 모두 한전이 담당한다. 한전이 자사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이번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실제로 조환익 한전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프로슈머 정책은 한전 입장에서 보면 마이너스여서 너무 심한 충격을 빨리 안 줬으면 좋겠다”며 “한전이 공공성 있는 시장을 열어야 하는 역할도 있기 때문에 프로슈머 시장에서 자연스런 조화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종영 중앙대 교수(전 지식경제부 에너지정책전문위원)는 “한전이 독점하고 있는 현 판매 구조가 바꾸지 않으면 프로슈머 시장은 1%도 채 안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군다나 프로슈머 정책이 현행 누진제를 토대로 설계된 점도 불안한 요소다. 누진제는 6단계에서 1kWh당 사용요금이 1단계와 비교해 11.7배(누진율)나 높다. 이 같은 누진제로 인해 요금 부담이 많은 가구가 프로슈머 정책의 대상자다. 그러나 현행 누진제가 개편되면 이 같은 사업구조가 유명무실해진다.

수백명의 소비자들은 누진체계가 과도한 부담을 안기는 위법적 요소가 있다며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르면 상반기 중으로 1심 판결이 나온다. 조환익 사장도 “요금폭탄을 안겨준다는 비판을 받는 주택용 누진제는 분명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누진제 개편 가능성을 열어놨다.

전문가들은 신산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판매구조, 요금체계 등 근본적인 구조개혁부터 추진할 것을 주문한다. 이상훈 소장은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기형적인 전기요금 체계 하에서는 신산업이 성장할 수 없다”며 “판매 시장을 개방해 한전 독점시장을 바꾸고 전기요금 체계를 시장요인을 반영하는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요금체계를 바꾸지 않고도 누진제 부담을 줄이면서 신산업을 키우는 창조적인 대안”이라며 “한전이 비용을 전액 부담해 세금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에너지 신산업,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전략에 전기요금이 시그널 효과가 있다”며 “그런 부분을 감안해 (현 수준대로 전기요금을) 적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산업통상자원부, 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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