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찌운 건 8할이 미국이다

선진국 남아도는 설탕·곡물
가난한 나라에 무차별 수출
'정크푸드' 등 노동자 유혹
비만은 개인 아닌 사회 문제
…………………………………
강요된 비만
프란시스 들프슈, 베르나르 메르 외|288쪽|거름
  • 등록 2012-08-02 오전 10:37:51

    수정 2012-08-02 오전 10:37:51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게으름, 식탐, 운동부족 또는 자기관리 실패. 이 항목들을 한 단어로 모으면? 비만이다. 이 부정적 카테고리에 놓인 이들에게 내려지는 진단은 간단하다. ‘많이 먹지 마라’ ‘계속 움직여라’ 등등 방종을 다스리는 일이다. 물론 이는 능숙한 의료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비만은 나쁜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까닭이다. 실수를 바로 잡으면 마땅히 옳은 길로 들어설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이것은 비극적 오해였다.

‘비극적 오해’를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모든 사회에서 비만은 가장 가난한 곳에서 가장 빨리 퍼진다’는 것, 바로 이를 간과한 탓이다. 다시 말해 비만 탈출이 한 개인의 의지로 해결된다고 믿는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란 거다. 좋아하는 음식을 원하는 방식대로 구입·가공해 먹는다는 건 착각이다. 소비자는 그저 경제·사회·문화적 관계들이 뒤얽힌 긴 사슬의 마지막 고리일 뿐이다.

프랑스 과학전문기자와 보건영양학 전문가 등 4명의 저자들이 내놓은 주장은 갈수록 거침이 없다.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가난하다’는 규칙까지 찾아낸다. 따라서 ‘인류의 뱃살은 개인책임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문제’라는 거다. 먹을거리의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가장 큰 원인이다. 때문에 비만은 영양실조와 마찬가지로 빈곤이 불러오는 질병이다.

가난할수록 뚱뚱하다

이쯤에서 저자들이 들춰낸 또 다른 문제를 만나게 된다. 왜 가난한 나라에서 비만율이 더 높게 나오는가다. 흔히 비만은 먹을거리가 풍족한 선진국에서 생기는 것으로 몰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개발도상국과 신흥산업국가의 비만인구가 선진국보다 훨씬 많더라는 거다. 왜? 여기엔 일반인들이 꿰뚫기 어려운 복잡한 음모가 있다. 선진국의 식품산업유통구조가 그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생산량이 발단이었다. 날이 갈수록 증가해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곡물과 유지류를 자국 내에선 처분할 길이 없어진 거다. 그들은 그 답을 수출에서 찾았다. 빈곤국가에 무차별적으로 싼 음식의 재료를 쏟아부었다.

싼 음식을 수입한 빈곤국가에선 그나마 부유한 사람들이 먼저 식습관을 바꾼다. 슈퍼마켓 선반 위 가공식품에 손을 뻗을 여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불러온 과체중·비만의 바이러스는 이후 중산층, 다시 그 이하 계층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비만이 식량생산과 산업구조의 메커니즘이 낳은 총체적 위기가 되는 시점이다.

그렇다면 비만은 결국 물가의 문제인가. 이 경우를 보자.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갑작스럽게 비만인구가 증가했다. 이전 20년 동안 2%에 불과했던 비만율이 이후 25년 새 15%까지 늘어난 거다. 이유는 경제로 분석됐다. 경제지표가 나아졌다는 얘기가 아니다. 채소·생선·우유 가격이 크게 상승한 반면 설탕·지방에 싸인 음식의 가격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이다. 소비자가 무엇을 골랐는지는 자명하다. 당연히 대량생산과 유통을 이끌어낸 기술발전도 한몫 했다.

내 뱃살엔 선진국의 음모가

여기서 낼 수 있는 결론은 비만이 단순히 건강과 관련된 주제가 아니란 것이다. 비만 유발 식품을 팔고 소비하도록 만들었더니 더 많은 수익을 내더라는 ‘합리적인’ 경제체제가 그 요인이다. 더 나아가 중앙아프리카에서 카사바를 생산하는 사람, 또 미국서 수천에이커 옥수수밭을 가로지르는 농부까지 시카고 증권거래소의 가격을 좌지우지하게 된 구조도 있다.

당장의 먹을거리 생산에 주력하던 역사가 변질됐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식품산업의 생산부터 광고·마케팅 방법까지 ‘비만을 양성하는’ 환경을 조성하게 된 것이 문제다. 그러니 ‘더 많이 먹되 운동은 덜 하라’고 부추기는 현실을 직시하라 이른다. 비만과 식품산업, 빈곤과 환경문제의 역학관계를 잘 풀어내는 것만이 비만을 잡을 수 있는 길이라 했다. 뱃살에 끼인 거대한 불공정을 끊어내라는 압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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