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닻 올렸지만..물동량도 수주도 '꽁꽁'

코로나 직격탄에 무역 줄고 해상 물동량도 급감
얼어붙은 발주 심리에 조선 일감 걱정
해운업계 위한 물류·항만 묶은 정책 필요
조선사에 수요 창출과 R&D 지원 시급
  • 등록 2020-05-03 오후 3:29:53

    수정 2020-05-03 오후 9:33:33

[부산=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지난달 29일 오후 2시 부산항 신항 현대부산신항만(HPNT) 4부두, 중국 닝보로 출항하기까지 12시간여 남은 ‘HMM 알헤시라스(Algeciras)호’에 컨테이너 3615개를 실으려 키(quay·부두) 크레인이 분주하게 지상과 선박 위를 오갔다.

지난달 29일 오후 부산 신항만 4부두에 정박한 HMM 알헤시라스호로 키 크레인이 컨테이너선을 옮기고 있다. (사진=경계영 기자)
전날 첫 기항지인 중국 칭다오에서 가져온 컨테이너 1000여개 하역까지 세계 최대 규모 컨테이너 선박인 알헤시라스호의 첫 부산항 출항엔 꼬박 하루 하고도 한나절이 필요했다.

이진철 HPNT 영업담당 상무는 “부산항에서 떠나 중국 닝보와 상하이, 얀티안을 거친 후 싱가포르까지 들러 컨테이너 2만4000여개를 싣고 유럽까지 84일여 동안 운항한다”며 “노선이 안정화되면 향후 부산에서만 컨테이너 1만개가량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6m여 길이 컨테이너(1TEU)를 2만4000개나 실을 수 있는 이 선박은 단순히 세계 최대 규모라는 수식어만으론 부족하다. 국내 최대 선사인 HMM(011200)이 선복량 기준 세계 8위 선사로 도약할 발판이자 “대한민국 해운 재건의 신호탄”(지난달 23일 명명식 문재인 대통령)이다.

지난달 23일 대우조선해양 옥포(거제) 조선소에서 개최된 ‘HMM 제1호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명명식’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 배재훈 HMM 대표이사(맨 우측)가 밧줄을 끊은 후 ‘HMM 알헤시라스호’를 바라보고 있다.(사진=HMM)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우리나라 해운 재건 상징

HMM은 세계적 선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아시아~유럽 노선에 알헤시라스호를 시작으로 2만4000TEU 컨테이너선 12척을 투입하면서다. 이들 선박은 HMM이 속한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The Alliance)와 공유해 컨테이너를 채울 걱정도 덜었다.

그간 세계적 선사가 한번에 컨테이너 2만여개를 실을 때 HMM이 선박에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는 고작 1만개 안팎 정도였다. 규모의 경제 시대에서 HMM이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번 최대 컨테이너선 투입으로 유럽 항로를 운항하는 평균 선형인 1만5000TEU급 선박에 비해 1척당 연간 운항비용 64억원을 절감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진철 상무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 도입이 ‘큰 의미’라고 한 뒤 “단위당 비용이 줄어들면서 경쟁력을 갖춘 데다 처리할 수 있는 화물량도 늘다보니 해운업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걱정은 남아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물동량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무역 규모가 11%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해운 조사기관인 알파라이너(Alphaliner)에 따르면 물동량 감소에 대비하려 3월에 컨테이너 선사는 아시아~북미 노선 16.7%, 아시아~유럽 노선 11.2% 공급을 감축했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종합정책연구본부장은 “관광 등 직접 대면하는 서비스업에 비해 물류업은 여러 단계를 거쳐 영향 받기에 당장 아닐지라도 석 달 후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각국 이동제한(lockdown) 조치가 길어지고 전 세계 공급망이 무너진다면 물동량이 ‘L’자형으로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오늘의 수주는 내일의 매출인데…” 우려 커진 조선업계

전방산업인 해운업의 불안은 조선업계로 확산했다.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는 최근 코로나19 관련 영향을 반영해 올해 전 세계 선박 발주량 전망치를 연초 1324척에서 756척으로 44%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발주량 987척보다도 더 줄어든 수준이다.

올 1분기 발주량은 129척으로 수주 절벽에 허덕이던 2016년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특히 올해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주력하겠다던 액화천연가스(LNG)선 발주는 1분기 단 한 건도 없었고, 그나마 카타르가 4월에 발주한 LNG선 16척은 중국 조선사 몫으로 돌아갔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물동량이 크게 준 데다 국제유가까지 내리고 공장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LNG 수요도 단기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며 “화물 증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발주 필요성이 줄다보니 조선업계가 상당 기간 어려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와 내년, 2년치 일감 밖에 확보하지 못한 조선업계는 불안에 떨고 있다. 수주한 후 선박 설계, 기자재 준비, 생산계획 수립 등에 6개월가량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늦어도 올해 하반기까지 일정 수준을 수주해야 2022년 일할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내 조선사가 안정적으로 선박을 건조하려면 100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가 필요하다”며 “2016년 수주량이 220만CGT에 그치면서 2018년 전체 건조량이 770만CGT 수준으로 줄었고 결국 구조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제2 한진해운·2016년 수주 위기 올 수도…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 몸처럼 묶인 조선·해운업계엔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는 입을 모은다. 특히 물동량 감소라는 어려움이 눈앞에 닥친 해운업계는 자칫 하면 ‘제2 한진해운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도 경고했다. 고병국 KMI 해운빅데이터연구센터장은 “정부가 선사의 수익성 상황을 조기에 파악해 선제적 대응 방안을 내놓으려면 ‘선사 영업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성우 본부장은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는 최근 물류 자회사를 사업부문으로 편입하는 등 해운·항만·물류를 묶어 생존전략을 구사한다”며 “해운·물류 기업이 동반 사업할 수 있도록 화주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경제특구 활성화 등으로 해외 기업의 국내 생산을 늘려 우리나라를 오가는 물동량을 증가시키는 등 기회 요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창 부연구위원은 “조선업계가 가장 어려웠던 2018년, HMM이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이 지금 알헤시라스호 등으로 차례로 인도될 예정이듯 국내 해운업계에서의 (발주) 수요를 창출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며 “어려움을 겪는 조선업계에 스마트 선박과 야드 등 기술 개발 지원과 함께 아직 절반에 그치는 LNG선 기자재 국산화도 정부가 나서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주요 조선사·기자재업계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남준우 삼성중공업 사장,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사장, 성윤모 장관,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사장.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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