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안에 LG전자와 LG화학의 대주주 지분을 25%까지 늘리겠습니다"
9년전인 2000년 6월8일, 강유식 현 ㈜LG 부회장이 증권거래소 기자실을 찾았다. 구본무 회장 일가가 3000억원을 들여 LG전자와 LG화학의 주식을 집중매입하는 등 대주주들간 지분정리가 이뤄지면서, 증권가에 지배구조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돌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회장 일가가 LG전자와 LG화학 지분을 늘려 나가겠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사실상 국내 대기업 최초의 지주회사 전환계획이 언급된 것이다. 그로부터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7월4일 LG그룹은 "2003년까지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공식발표했다.
시계를 다시 뒤로 돌려 1999년. 구본무 회장은 신년사에서 "LG도 그룹의 의미를 경영이념과 브랜드를 공유하는 `독립기업의 협력체`로 정의했다"고 밝혔다. 새로운 지배구조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외환위기를 빠져있던 한국 정부 역시 이른바 재벌들에게 강도높은 혁신을 요구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시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LG의 고위 경영진들은 주력계열사들이 높은 기업가치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출자구조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점에 고심하고 있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단이 내려졌다.
지주회사 전환 발표 후 3년간은 단계적 변화가 이뤄졌다. 2001년 4월과 2002년 4월 LG화학과 LG전자가 각각 회사분할 등을 통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고, 2003년 3월 통합지주회사인 ㈜LG가 설립됐다.
LG의 이같은 변화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통적인 재벌과 결별하며 한국기업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6년의 시간` 달라진 LG
지주회사 전환 6년이 지난 지금 LG의 모습은 그야말로 `환골탈태`다. 매년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100조원 시대를 연 LG그룹은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예고됐던 올해 매출 목표를 사상 최대치인 116조원으로 제시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은 3분기가 지난 현재 `달성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변해있다. 실제 LG전자와 LG디스플레이, LG화학 등 주력 계열사들은 3분기 최대 매출실적을 기록중이다.
LG그룹은 지난해 매출 115조원을 달성, 1947년 창업 후 처음으로 매출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1978년 당시 럭키그룹 시절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이래 그야말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낸 셈이다.
LG가 이처럼 견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고객과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이념이 반영된 기업문화 `LG Way`의 정착 ▲위기에 강한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 ▲글로벌 LG브랜드 파워 강화 등 총체적인 경쟁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LG가 투명하고 선진화 된 경영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것이 LG만의 경쟁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지주회사 체제 `가속 붙었다`..주력계열사 약진
LG(003550)가 갖춘 지주회사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출자와 경영의 분리를 통한 책임경영이다.
지주회사는 자회사에 대한 출자와 전체적인 사업포트폴리오 관리, 자회사 CEO에 대한 인사만을 담당한다. 사업자회사는 계열사에 대한 상호 순환출자 등 출자에 대한 부담없이 자기사업에만 전념하면 된다.
실제 주력계열사 중 하나인 LG전자의 경우 과거에는 경영권 확보차원에서 사업과는 무관한 계열사 주식을 보유했다. 당연히 사업 외적인 요인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사업실적만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LG는 또 지주회사체제 전환작업과 함께 사업영역의 단순화를 추진해 각 부문에서의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본부를 설치,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추진해왔다.
화학부문에서는 LG화학이 석유화학·정보전자소재 등 기존 사업분야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신성장동력인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해 4월 LG화학에서 분사한 LG하우시스도 통합인테리어 브랜드 `지인(Z:IN)`을 내세워 차별화된 고객가치 창출에 앞장서고 있다.
통신·서비스부문의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 통신 3사는 지난해 누적 가입자수 1200만 시대를 달성한 가운데, 내년 초 합병을 통해 다양한 컨버전스 상품 및 신규사업에서 성장시너지를 높여나갈 계획이다.
◇`회장님 지시사항입니다` 시대는 갔다
"회장님 지시사항입니다"
이런 전화 한통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이뤄지던 시기가 LG에도 있었다.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 후 이같은 모습은 사라졌다. 회장의 전화 한통으로 각 계열사 경영의 틀이 한순간에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LG가 지주회사 체제 후에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로 `합의를 통한 책임경영`이라는 차별화된 기업문화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가 출범하며 LG의 최고경영진들은 합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운영해 나가는 책임경영의 문화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구본무 회장이 매년 두차례 각 계열사 CEO들과 갖는 `컨센서스 미팅(CM)`이다. 컨센서스 미팅은 구본무 회장과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 CEO 및 사업본부장들이 순차적으로 만나 사업성과를 점검하고 다음해 사업계획과 중장기 사업전략을 합의·결정하는 독특한 전략회의다.
컨센서스 미팅은 매년 6월과 11월 연간 2회 실시하며, 6월에는 상반기 실적점검 및 하반기 계획을 수립한다. 11월에는 다음 해 사업계획 및 중장기 사업전략을 집중 논의·합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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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를 통해 합의에 이르게 된 사업전략에 대해서는 계열사에 모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철저한 책임경영을 실천하게 된다. 그룹의 최고경영자가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각 계열사들이 사업의 특성을 살려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지주회사 LG가 갖는 또 하나의 장점은 일관성 있는 브랜드 관리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LG의 브랜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난 2005년 국내기업에서 처음으로 브랜드 전담조직인 브랜드관리팀을 신설했다.
브랜드관리팀은 국내외에서 `LG브랜드` 중장기 육성전략 수립과 CI(Corporate Identity) 보호 및 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2007년에는 BI(Brand Identity)를 `사랑`으로 재정립하고 `LG브랜드`의 파워와 가치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결과는 숫자가 말해준다`
이같은 LG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대한 평가는 매출과 기업가치 상승이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LG그룹 전체 매출액은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한 2003년 61조원에서 지난해 115조원으로 2배 가량 증가했다.
LG화학의 매출도 2002년 5조4331억원에서 지난해 14조4878억원으로 167% 급증했다.
여기에 지주회사 체제를 통해 경영투명성이 높아지고 사업실적의 변수가 사라지면서 외국인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LG 주식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주회사전환 이전 LG의 상장사 시가총액은 2003년2월말에 13조6000억원이었지만 지난 10월에는 대략 70조원을 넘고 있다. 무려 5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개별 상장사들의 주가와 외국인지분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주회사인 ㈜LG의 경우 지난 2003년3월11일 재상장 당시 주가는 6550원이었지만 지금은 7200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약 11배 가량 올랐다. 외국인지분율도 당시 3.75%에서 현재 29.60%로 8배 가까이 늘어났다.
LG화학은 회사분할 직전일인 2001년3월28일 기준으로 당시 주가가 1만2700원이었지만 현재 주가는 20만4000원대로 16배이상 상승했다.
LG전자의 경우도 분할전 주가가 4만5000원, 시가총액은 6조9803억원이었지만 현재 주가는 3배 가까이 상승한 11만4000원대다. 현재 시가총액도 3배 가까이 상승한 16조 5622원으로 증가했다.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 이후 LG의 기업가치가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