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오는 7월 27일까지 수림문화재단 수림큐브에서 2024 수림아트랩 재창작지원에 선정된 김희욱, 정수의 2인전 ‘낮은 휘파람, 박제된 손 Low Whistle, Stuffed Hand’이 개최된다.
‘낮은 휘파람, 박제된 손 Low Whistle, Stuffed Hand’은 죽음이라는 집합적·추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개별적·구체적인 개념 혹은 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전시 제목은 각 작가의 작품이 암시하는 심상을 바탕으로 지어졌으며, 정수의 작품으로부터는 ‘낮은 휘파람’이, 김희욱의 작품으로부터는 ‘박제된 손’이 연상된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결코 그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두 작가는 두려움, 회피, 공허, 우울과 절묘한 환희, 충동, 새로움 등을 상상한다. 가깝고도 먼 소멸에 관한 상상은 익명화된 개인들의 분투로 형상화되기도 하고, 혹은 기억의 잔해들이 자아내는 아스라한 공기로 나타나기도 한다.
김희욱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생에 대한 집착이 한 쌍이라는 사실을 중요한 축으로 삼아 입체와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소멸에 대한 명징한 공포와 이에 대한 반응은 집단적인 차원에서는 사후세계를 꿈꾸는 종교에 대한 믿음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나타나 왔으며, 역설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이 일어나는 전쟁으로도 표출되어 왔다. 기나긴 시간 속 그 두 가지가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가운데 삶에 대한 개개인의 열망은 죽음 앞에서는 빛이 바래고 몰개성해지며, 얼굴과 이름이 없는 수많은 이들의 파괴적인 손, 혹은 간절히 기도하는 손만이 그 모습 그대로 굳어진 듯 영원히 반복된다. 1층의 작품이 인간의 권력과 이에 대한 욕망을 암시한다면 지하 1층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와 분투를 형상화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1층과 지하를 잇는 회색 빛 기둥은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욕망과 공포가 사실 한 덩어리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정수는 일상적인 물건이나 그 파편들을 배치함으로써 그 사물을 통과해 버린 시간을 애도한다. 이번 전시에서 정수는 사물들이 어지럽게 매달려 있거나 가구가 흰 천으로 덮여버린 채 오래 방치된 듯한 설치 작품을 제시한다. 방과 같은 공간의 형태를 한 이 기념비는 으레 지나간 시간에 관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도래하지 않은 탄생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부재하는 것에 대한 갈망은 곧잘 강박을 낳고 시간에 대한 감각을 뒤틀어 버린다. 축하하는 시끄러운 목소리와 웃음으로 가득 차 있던 방이 버려지고 잊힌 가운데 (존재하지는 않는) 나지막한 휘파람의 거칠고 미약한 진동만이 남는 듯하다.
6월 22일 오후 3시에는 정수 작가의 퍼포먼스 ‘더 많은 섹스, 더 없을 생일 More Sex, No More Birthdays’가 수림큐브 2층 전시실에서 열린다. 설치 작품의 모티브가 된 정수 작가의 미공개 텍스트 8편을 일회적으로 공개하는 퍼포먼스로, 정수, 김솔이 작가가 퍼포머로 참여한다. 같은 날 오후 4시에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준영 기획자가 진행하는 김희욱, 정수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가 개최된다. 사전신청 접수 중이며 현장등록또는 워크인 참여도 가능하다.
본 전시는 김희욱, 정수 작가의 2023 수림아트랩 신작지원 전시 ‘Polar’에 대한 심사를 바탕으로 2024 수림아트랩 재창작에 선정되어 수림문화재단의 후원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