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우연히 일본 소녀가극단 ‘다카라즈카’의 홍보물을 보고 연극인생을 살 것을 가슴에 품었다고 했다. 1943년 극단 현대극장 입단한 17살 꿈 많은 소녀는 오로지 연극 한 길만 걸어왔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부독재 등 현대사의 험난한 고비를 거치면서도 한결같이 무대를 지켰다.
배우 백성희(91·본명 이어순이)가 8일 밤 세상을 떠났다. 향년 91세. 지난해 가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서울의 한 요양병원 중환자실에서 투병중 이날 밤 11시18분경 병석에서 눈을 감았다. 2013년 자신의 이름을 딴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3월의 눈’과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마리아’를 연기한 ‘바냐아저씨’는 고인의 유작이 됐다.
|
1956년 첫 영화 ‘유전의 애수’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연극 연기의 힘을 믿었던 고인은 ‘봄날은 간다’(2001) 외에는 거의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다.
1972년 국립극단 사상 최초로 시행한 단장직선제에서는 최연소 여성 국립극단 단장으로 선출돼 연극계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시 리더십과 행정력을 인정받아 1991년 다시 한 번 국립극단 단장에 추대됐다. 2002년부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동아연극상(1965), 대통령표창(1980), 보관문화훈장(1983),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4), 이해랑연극상(1996), 대한민국예술원상(1999), 은관문화훈장(2010) 등을 받았다.
고인은 지난해 후배들의 도움을 얻어 지난 12월 15일 회고록 ‘백성희의 삷과 연극: 연극의 정석’을 발간하기도 했다. 김남석 부경대 교수가 지난해 4월부터 고인의 인터뷰와 구술 채록, 과거 인터뷰 분석 등을 통해 정리했다. 연기 입문 계기부터 국립극단 단원 시절, 한국 연극에 대한 제언 등 백씨의 연극인생이 640페이지에 걸쳐 담겨 있다. 김 교수와 고인의 대담을 비롯해 평론가 서연호, 연극배우 김금지, 연출가 임영웅 등 연극계 명사 5인의 인터뷰를 담았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12일 오전 8시 30분이다. 장례는 대한민국 연극인장으로 치러지며 12일 오전 10시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영결식을 갖는다. 이후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손진책 전(前)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연출로 노제가 열린다.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