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전자·신소재 등 산업계, 미래 먹거리 '차질'

[규제개혁이 창조경제다]⑧바스프,다우케미칼 R&D센터 세웠는데..'엑소더스' 우려
  • 등록 2013-12-20 오전 10:36:09

    수정 2013-12-20 오전 10:37:40

3월 5일 발생한 구미국가산업1단지 내 구미케미칼 염소가스 누출사고 모습. 1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호흡곤란 등으로 인근 주민 170여 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지난 8월말 열린 국회 신성장산업포럼은 이름과 달리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및 ‘화학물질 등록·평가법(화평법)’에 대한 반도체 소재업계의 성토의 장이었다. 국내 연구·개발(R&D)을 그만두고 해외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오갔다.

이준혁 동진쎄미켐(005290) 대표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사실상 화학 공정이다. 관리를 잘하는 건 좋은데, 법이 너무 징벌주의적으로 갔다”며 “글로벌 경쟁사들은 R&D 기지가 해외 곳곳에 있으니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개발한 뒤 국내에 들여와 팔 수 있지만, 국내 업체들은 R&D를 시작할 수조차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돈도 돈이지만 (화관법으로)시간적으로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는 만큼 국내 업체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9월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까지 드러내놓고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허 회장은 “최근 논의되고 있는 화평법 등은 기업 현실에 맞지 않고, 투자나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해외기업의 국내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이런 규제들이 외국인 투자 기피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 회복을 위해 (법안을) 보다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법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조심해서 다뤄야하는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사용하자는 입법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두 법은 지나친 규제로 업계의 R&D를 크게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정부가 애초 내놓은 시안보다 완화한 시행령을 지난 9월 내놓았지만, 화평법의 경우 화학물질 추가 등록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6개월의 등록절차로 인해 신제품 개발 경쟁에서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산업계는 보고 있다. 화관법은 매출액 최대 5%에 달하는 과징금이 탁상행정에서 나왔다는 지적이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영업이익률이 5%를 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매출의 5%를 과징금으로 물리면 불가피한 사고 한번에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며 ”기업들은 문 닫으란 소리”라고 토로했다.

화관법이나 화평법 모두 석유·화학 업체뿐 아니라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자동차·반도체·LCD 업종 까지 산업계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 그만큼 파급효과가 커 산업계는 하위법령에까지 노심초사 애를 태우며 지켜보고 있다.

외국업체들 조차 불안한 시선으로 보기는 마찬가지다. 화평법의 경우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세계무역기구(WTO)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열린 WTO 무역기술장벽 위원회에서 한국의 화평법을 특정무역현안(STC)으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학물질 관련 국내 규제가 강화되면서 한국에 진출한 자국기업에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화학물질 등록시 영업비밀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국내에는 삼성과 LG의 전자제품 관련시장을 바라보고 독일 머크와 미국 다우케미칼 등 전자소재를 취급하는 외국계 화학회사 등이 종합 R&D센터를 상당수 운영하고 있다.이들도 자국보다 까다로울 수 있는 화학물 관리 관련 법을 적용받으면 R&D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한때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가 산업통상자원부에 화평법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글로벌기업의 우려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효력이 발생하는 2015년부터 관련 산업이 크게 위축될 뿐 아니라 외국계 업체들의 엑소더스(탈출)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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