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강남역에서 '지영아'하고 부르면 동시에 다섯을 돌아본다는 검증 없는 실험 결과는 한 가방의 이름이 되기도 했다. 강남역 한복판, 혹은 명동 중앙에서 루이비통의 스피디백은 3분에 한번씩 보인다고들 한다. 그래서 이 가방의 애칭이 '지영이 백'이다. '경희 백'이나 '현정이 백'이어도 상관없을 이 백은 '너도 지영이 백 들었구나!'하는 농담 사이에서 여전히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3분 백' '국민 백'이라는 별칭도 가진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스피디백은 면세점에서 매일 20~ 50개 이상, 한 매장에서 한 달에 100개 이상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는 루이비통 대표 히트작이다.
루이비통에서 자체 제작해 특허를 받은 캔버스 패브릭에 코팅을 한 스피디는 내부가 넓어 수납이 좋고 가방 안이 한눈에 다 보이며 여닫기 편하다. 무엇보다도 매우 가볍다는 특징은 스피디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무겁기로 악명 높은 최근 유행의 통가죽 백들과 비교하면 깃털처럼 가볍다고 해도 괜찮다. 스크래치도 잘 생기지 않고 접었다 펴도 그 자리도 크게 남지 않아 여행지에서도 꽤 편하다. 1935년에 처음 선보여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이 백의 또 다른 장점은 큰 '포용력'에 있다. 너무 바빠 채 가방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 날에도 스피디는 모자라지 않는 소품이 되어주고, 격식 갖춘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 존재감으로 스타일의 안전한 마무리를 도모한다. 액센트로서의 탁월한 기능은 없지만 안정적이고 보편적인, 평균의 취향을 대변하는 백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자들이 스피디 백을 사는 것은, 명품족이 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가격의 백이어서도 아니고, 일본 여자들의 명품 구입의 이유처럼 '남들과 똑같지 않으면 불안해서'도 아니다. 이 백으로 자신의 여유와 취향을 대변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단지, 많이 들어가고 가볍고 어디에서나 어떤 옷에나 잘 어울리고 오래 들어도 질리지 않기 때문이다. 가방 때문에 눈에 띄거나 초라해 보일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백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지하철 한 칸에 앉은 예닐곱 명 여자들의 무릎 위에 크기가 다른 스피디가 똑같이 올라 앉아 있다 하더라도, 어서 자리를 피하고 싶은 창피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아,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시군요!"할 뿐, "에이, 시간만 있었으면 집에 갔다가 나온다, 내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스피디 백을 들고 있다고 해서 몰개성, 몰취향으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 편한 것을 원하는 것이 개성이 없는 것으로 치부될 수는 없으니까. 세상의 모든 지영은 모두 다르다. 한 반에 지영이 열 명 가까이 되던 때도 있었지만 그녀들은 모두 각각 따로 빛났다. 실용적인 가방 하나를 샀다는 이유로 '취향이라고는 없는 한국 여자'거나 '어떻게든 명품족이 되고 싶은 여자'라는 평가, 이제는 사양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