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회사를 다니는 신모씨(38)는 가끔 점심식사 후 동료들과 함께 회사 앞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제값주고 살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집 근처 동네마트에서는 일년 내내 반값에 아이스크림을 팔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워지면 사람들이 자주 찾게 되는 것이 바로 아이스크림이다. 푹푹 찌는 날 시원한 아이스크림 하나면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고 달달한 즐거움까지 맛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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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아이스크림의 시작 반값 아이스크림이 생겨난 것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초반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이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동네 슈퍼마켓들의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 슈퍼마켓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반값 아이스크림이다. 보통 슈퍼마켓에서는 냉장고를 점포 밖에 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OO%` 할인이란 문구를 적어놓고 손님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스크림의 할인율은 처음에는 30% 수준이었다. 슈퍼마켓에서 거의 노마진으로 아이스크림을 `미끼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 그러다가 폐업하는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소위 `땡처리` 물량들이 슈퍼마켓으로 풀리면서 반값 아이스크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통 슈퍼마켓이 폐점을 하면 물건 값을 제대로 받는 것이 아니라 통째로 가격을 매겨 거래를 하기 때문에 매우 저렴하고, 이를 `땡처리`라고 부른다. 아이스크림의 경우 냉장고를 끄면 바로 제품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땡처리`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땡처리` 물량이 끊임없이 쏟아져나는 것도 아니고 반값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이 늘어나면서 할인판매가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이때부터 슈퍼마켓들에서는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반값에 팔 수 있도록 납품가를 인하해 달라는 것이 슈퍼마켓들의 요구였다.
동시에 특정회사의 제품을 많이 파는 전속점과 유사한 슈퍼마켓들도 많이 생겼다. `너희 회사 제품을 많이 팔아 줄 테니 싸게 공급해 달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사에서 설치한 냉동고를 갖고 있는 슈퍼마켓에는 A사 제품들이 주로 구비돼 있고 다른 회사 제품은 인기 제품 위주로만 구색을 갖춰 판매하는 형태다.
할인율 맞춰 올라가는 가격
이렇게 비정상적인 아이스크림의 판매가격 구조는 결국 아이스크림 가격의 인상을 초래했다. 아이스크림 가격은 바 기준으로 500원에서 2005년 700원, 2010년 1000원으로 크게 2번 인상됐다.
하지만 판매가격으로 따져보면 2010년에도 2000년대 초반의 가격인 500원으로 팔린 셈이다. 명목상 가격은 올랐지만 실질적인 가격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가격을 올릴 필요가 없는데도 반값 할인이라는 기형적인 판매구조로 인해 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랐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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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짚어야 할 문제는 모든 판매처에서 아이스크림을 반값으로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편의점은 일부 행사 제품을 빼곤 아이스크림 가격을 온전히 다 받고 있다. 따라서 원가 대비 3배가량 비싸게 판매를 하고 있는 셈이다. 슈퍼마켓들도 제값을 받거나 10% 정도 할인해 판매하는 곳들은 높은 마진을 보고 있다.
따라서 기형적인 가격 구조로 인해 편의점이나 할인을 하지 않고 판매하는 소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소비자들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반값 아이스크림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유리한 가격 구조인지 따져봐야 할 대목이다.
롯데제과의 도전 이런 가운데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롯데제과(004990)가 반값 아이스크림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롯데제과는 지난 3월 일부 아이스크림 제품에 권장소비자가격을 표시하면서 기존의 가격을 대폭 낮췄다. 티코와 조안나바는 8000원에서 5000원으로, 조안나 홈타입은 7000원에서 5000원으로 가격이 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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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제과가 권장소비자가격을 낮춘 것은 반값 아이스크림 유통구조를 올바로 잡기 위해서다. 소매점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반값에 팔고, 제조업체는 이런 유통구조에 맞추기 위해 가격을 기형적으로 인상한 시장구조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소비자 모두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시장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누군가 나서야 하는데 1위 업체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며 "시장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처음에는 비인기 제품을 중심으로 가격인하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매점들의 참여가 관건"이라며 "소매점 입장에서 반값 아이스크림이란 카드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값 아이스크림 타파 가능할까
우선 당장의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아이스크림업계에 따르면 롯데제과가 가격인하를 단행한 3월 이전과 이후에 시장점유율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 시기가 아이스크림의 비수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의견이 대수다.
롯데제과 역시 이런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시장 개혁에 더욱 드라이브를 걸어야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히트상품인 설레임의 가격을 절반으로 떨어뜨린 것은 이런 의지의 표현으로 분석된다. 설레임은 연간 매출이 500억원에 이르는 아이스크림 시장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제품이다. 그만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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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빙그레와 해태제과는 더욱 신중하게 시장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나마 가지고 있는 시장을 한순간에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롯데제과의 움직임에 동의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빙그레 관계자는 "현재 아이스크림 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제조사들이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구조가 개선되기 바라는 바람은 같다"고 말했다. 해태제과 관계자 역시 "반값 아이스크림 시장에 대한 문제 인식은 공감하지만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특히 두 업체 모두 시장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면 당연히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골목상권 보호’ 논리도 감안해야
아이스크림 가격 정상화가 성공하기 위해선 슈퍼마켓의 참여가 절대적이란 것이 제조업체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현재 아이스크림은 슈퍼마켓에서 70%가 판매되고 있고, 편의점·대형마트 등이 나머지를 팔고 있다. 슈퍼마켓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장시간 보관이 어렵고 더울 때 빨리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아이스크림의 특성 때문이다. 슈퍼마켓들이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슈퍼마켓)에 대응하기 위한 미끼 상품으로 아이스크림을 선택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슈퍼마켓 입장에서는 반값 아이스크림이란 거의 유일한 미끼 상품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스크림은 동네슈퍼나 동네마트가 싸다는 인식이 소비자들에게 깔려 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슈퍼에 오게 되고 이왕 온 김에 다른 필요한 것도 함께 구매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 강서구에서 슈퍼마켓 운영하는 김모씨(53)는 "우리도 반값 아이스크림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공감한다"며 "하지만 우리 같은 영세업자 입장에서 이만한 고객 유인책을 찾기란 쉽지 않아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슈퍼마켓들에게 반값 아이스크림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값 아이스크림 문제는 슈퍼마켓 등 동네상권 보호와 함께 맞물려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관련 업체들은 정부가 단순히 가격적인 측면만 가지고 제조업체나 유통업체들을 압박할 것에 대해서도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반값 아이스크림 구조가 개선돼 아이스크림 가격이 정상화되면 지금보다 더욱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권장소비자가격이 반으로 내려가면 슈퍼마켓들은 여기에서 10~20% 정도 할인판매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가격인하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스크림 가격이 정상화되면 구모씨가 가진 동네마트의 아이스크림 가격에 대한 의문도 신모씨의 편의점 가격에 대한 불만도 모두 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소비자에게 이익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