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릉에 앉아, 눈으로 들이켜는 백두대간

경북 문경 동로면 황장산
  • 등록 2009-03-25 오후 12:00:00

    수정 2009-03-25 오후 12:00:00

▲ 멧등바위의 정상 사이 암릉 구간에서 생달리 쪽으로 바라다 본 황장산의 능선.


[경향닷컴 제공] 황장산(1077.3m)은 백두대간 남한 구간의 중간쯤에 우뚝 솟아있다. 소백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이 110㎞에 이르는 문경 구간 초입에 황장산을 빚어놓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이다. 골짜기가 깊어 원시림이 잘 보전돼 있고, 암릉과 암벽이 빼어나다. 대미산, 포암산, 부봉으로 물길처럼 흐르는 백두대간 길과 단양의 도락산 등 주변 명산들을 한 폭의 동양화 보듯 감상하며 오를 수 있는, 조망미가 특히 뛰어난 산이다.

황장산의 이름은 황장목이 많은 데서 유래했다. 황장목은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 데 쓰는 최고 품질의 소나무를 말한다. 송진이 꽉 차 속살은 누렇고, 목질이 단단하고 결도 곱다. 조선 숙종 때(1680년)는 나무 보호를 위해 벌목과 개간을 금지하는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를 파견, 감시했다.

당시 세워진 봉산 표석(지방문화재 제227호)이 명전리에 남아 있다. 지금은 안타깝게도 과도한 벌채 등으로 황장목이 없다.

황장산의 옛 이름은 작성산(鵲城山)이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에 그렇게 표기돼 있다. 산세가 까치집처럼 생겼고 작성(鵲城)이란 성터가 있다. 조선 중기까지 작성산으로 불려오다 봉산으로 지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산 이름이 황장산으로 바뀐 듯하다. 황장산이 있는 동로면은 고려시대까지 작성현(鵲城縣)으로 불렸고, 황장산 문안골에는 성문 문설주 등 고구려성으로 추정되는 작성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과 토벌대, 인민군과 국군간 격전이 벌어지는 등 치열했던 우리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있다. 
 
▲ 황장산 차갓재에 있는 백두대간 남한 구간 중간 지점 표지석과 장승. 2005년 7월 문경 산들산악회에서 세웠다.
황장산의 능선들은 크고 작은 바위들로 이뤄져 있다. 암산답게 곳곳에서 암봉의 비경이 펼쳐진다. 베를 한 올 한 올 늘어뜨려 놓은 것 처럼 생긴 ‘베바위’, 화강암 절벽이 치마를 펼친 것 같다 하여 이름지어진 ‘치마바위’, 비녀를 꽂아 쪽을 진 것처럼 생긴 감투봉, 투구봉, 조망바위 등이 산세와 조화를 이룬다. 기암괴석 사이에 뿌리를 박고 세찬 풍파를 견뎌온 소나무들은 운치를 더한다. 정상 아래 수직에 가까운 멧등바위와 부근 암릉지대에서는 로프를 잡고 절벽 구간을 오르는 스릴감을 느낄 수 있다. 거친 암릉 구간이 많지만 암벽 등반 코스로 인기가 높은 수리봉(841m) 촛대바위 등 일부를 제외하고 장비 없이 오르지 못할 바위는 거의 없다.

생달2리 안산다리마을 위 차갓재에는 ‘백두대간 남한 구간 중간 지점’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통일이여! 통일이여!/민족의 가슴을 멍들게 한/철조망이 걷히고/막혔던 혈관을 뚫고/끓는 피가 맑게 흐르는 날/대간 길 마루금에 흩날리는/풋풋한 풀꽃 내음을 맘껏 호흡하며/물안개 피는 북녘땅 삼재령에서/다시 한 번 힘찬 발걸음 내딛는/네 모습이 보고 싶다.’ 표지석 뒷면에는 이 같은 산악인들의 염원이 새겨져 있다. 문경지역 산악회에서 세운 것이다. 좌우에는 두 장승, ‘백두대장군’과 ‘지리여장군’이 서 있다.

정상쪽 능선에 오르면 백두대간 길과 백두대간에서 가지쳐 나간 주변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남쪽으로 대미산·운달산·주흘산, 북쪽으로 도락산, 북서쪽으로 월악산, 동북쪽으로 황정산과 그 뒤로 소백산이 한 폭의 화첩처럼 펼쳐진다.

문안골, 토시골, 우망골 등 남북으로 몇 갈래씩 뻗어나간 골짜기는 반나절은 족히 걸릴 만큼 펑퍼짐하고 깊다. 거친 능선과 달리 수천년 동안 피흘리며 쓰러진 남정네들을 감싸안은 여인의 넓고 넓은 치맛자락 같은 모습이다.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아 계곡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전설 깃든 옛 명당에서 오미자 한잔, 호산춘 한잔

황장산은 사방으로 여러 갈래 길이 나 있다. 문경시 동로면 생달2리 안산다리마을에서 차갓재나 작은차갓재로 오르는 길이 있고, 동로초교 생달분교에서 토시골로 오르는 길, 단양군 대강면에서 문안골로 오르는 길, 벌재나 황장산 약수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오르는 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안산다리마을에서 차갓재나 작은차갓재로 올라 백두대간 길을 밟고 정상에 오른 뒤 산태골로 내려오는 원점 회귀 산행 코스가 많이 알려져 있다. 차갓재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의 아기자기한 암릉미를 즐기며 사방에 솟아있는 주변 산들을 감상할 수 있다. 산행 시간은 4시간 안팎이다. 안산다리마을에서 작은차갓재로 올라 백두대간을 타고 정상에서 계속해서 감투봉, 황장재, 치마바위, 폐맥이재를 거쳐 벌재까지 가는 데는 4시간30분가량 걸린다.

산행 기점으로 많이 이용되는 안산다리마을에는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주로 찾는 민박집이 여러 곳 있다. 황장산 기슭 동로면 일대는 오미자로 유명하다. 생달1리에는 오미자청을 만들며 농·산촌을 체험할 수 있는 오미자체험마을도 있다. 면소재지에서 생달리간 도로변(적성리)에는 풍수설과 관련한 전설이 깃들어있는 말(馬)무덤이 수령 300년 된 큰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에서 귀화한 두사충이 조선의 팔대 명당 중 하나라고 전하는 명당을 적성리에서 발견,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정탁의 머슴에게 일러주어 나중에 정탁의 아들이 찾아나섰는데 타고온 말이 갑자기 뒷발질을 해 머슴이 즉사하자 화가 나 말의 목을 베어 묻었다는 곳이다. 산악인들이 간단하게 술 한 잔 하며 황장산 산행을 결산하는 장소로 많이 애용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시내 쪽으로 차로 10분쯤 가면 경천호가 나오고 이어 도로변에 황희 정승 후손들이 500년을 빚어온 명주 ‘호산춘’ 제조장(산북면 대하리, 054-552-7036)이 나온다. 호산춘은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택에서 전승돼온 솔향 그윽한 가양주로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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