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Q&A)현대차 약사(略史)는?

  • 등록 2007-12-21 오전 11:41:10

    수정 2007-12-21 오전 11:41:10

[이데일리 지영한기자] 현대자동차(005380)는 1967년 12월29일 출범해 올해로 창사 40주년을 맞이한다. 현대차의 약사(略史)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창업의 첫걸음

건설업을 주력으로 1960년대 현대 신화의 서막을 열기 시작한 정주영 회장, 하지만 일제치하 자동차정비소 수리공 시절부터 늘 뜨거운 열정으로 그의 심중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자동차공장 건설과 자동차부국의 꿈이었다.

그의 꿈은 동생 정세영 사장과 함께 1967년 현대자동차주식회사의 설립, 조립생산을 위한 공장건설 계획 등으로 구체화된다. 현대자동차의 출범은 국내 자동차업계의 독점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경쟁시대가 도래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울러 이같은 경쟁체제 아래 새로운 자동차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었다. 이러한 자동차산업의 진출은 현대가 명실상부한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하는 시발점이기도 했다.

▲고유모델 탄생과 현대 신화의 서막

1970년대말의 석유파동과 국내외 경기불안을 딛고 현대자동차는 마침내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개발함으로써 한국 자동차공업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된다.

1973년부터 종합 자동차공장 건설을 위해 자금조달과 부지조성 등에 심혈을 기울인 현대자동차는 이듬해인 1974년 착공에 들어가 1970년대말까지 모든 생산설비 구축을 마무리하게 된다. 현대신화의 진원지, 울산공장이 탄생한 것이다.

이 시기, 현대자동차 역사 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사에도 기념비적인 일로 남을 보다 중요한 사건은 바로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의 탄생이었다. 포니는 그 차명의 의미하는 것 처럼 현대자동차의 미래, 한국자동차산업의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기운찬 조랑말이었다.

▲시련을 딛고 세계를 향해

1980년을 전후한 국내정치의 혼돈상과 이미 1970년대부터 지속된 원유파동의 여파는 국내외 경제전반은 물론 현대자동차에도 심각한 시련을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과 수출 다변화 노력을 지속하는 한편 승용차 30만대 공장 건설이라는 도전적인 경영정책을 펼치게 된다.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여긴 이같은 정책은 그대로 적중하여 완벽한 생산시설을 바탕으로 한 현대자동차는 차종이 다양화와 수출다각화에 성공하게 된다. 30만대 공장건설로 양산체제를 더욱 확고히 한 현대자동차는 명실공히 세계 속의 현대, 세계인의 현대자동차로 발돋움하게 된다.

▲연산 100만대 생산체제 구축과 현대자동차의 자기혁신

1988년 1월 현대자동차는 전차종 수출 100만대를 넘어섰으며, 단일 차종으로는 국내 최초로 엑셀 생산 100만대를 돌파했다. 이같은 국내 초유의 기록 속에서 현대자동차는 고품격 중형세단 쏘나타를 통해 다시한번 현대차를 세계인의 차로 인식시키게 된다.

이어 개발된 제3세대 승용차 신형 엑셀,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스포츠카 '스쿠프', 고성능 자동차 '엘란트라', 그리고 각종 상용차들도 국내외에서 연일 선풍을 일으킨 현대차의 가계를 이어갔다. 1990년대 들어 울산공장은 단일규모로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공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자동차는 경영 전부문에 걸친 자기혁신의 노력을 계속했다.

▲경영혁신 및 세계화 기반 구축

1990년대는 미래 지향적인 첨단기술의 개발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들도 놀랄만한 신기술 개발과 더불어 환경친화적 기업으로서의 소명도 잊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선진국의 개방압력과 국내 신규 자동차업계의 출범, 모든 경제분야에 걸친 불황의 여파 등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현대자동차는 터키공장 준공과 인도공장 준공 등 보다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렸다.

울산과 전주, 아산을 잇는 국내 생산기지, 1997년 9월 준공한 터키공장과 1998년 준공한 인도공장 등의 해외 생산거점을 구축한 현대자동차는 국내외 고객에 대한 정성, 환경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 그리고 종업원 복지와 지역사회 활동 등을 통한 신뢰를 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불황을 이겨내고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다.

또한 1990년대에는 다양한 세그먼트의 신차들이 대거 선보였다. 특히 1994년 갤로퍼신화에 이어 1995년 싼타모를 출시해 90년대 후반 불거진 RV붐의 시작을 알렸으며 아반떼, 티뷰론, EF쏘나타, 그랜저XG, 싼타페 등이 출시됐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새천년을 맞아 현대자동차는 울산, 아산 전주 등 국내 생산기지를 중심으로 중국, 인도, 터키공장과 미국의 앨라배마 공장 등 잇따라 해외공장과 주요 연구시설을 확충함으로써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2001년에는 싼타페가 미국 소비자 만족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 일류 자동차 회사를 향한 행보를 더욱 활발히 하고, 2003년에는 정몽구 회장이 '글로벌 환경경영'을 공식 선포함으로써 환경보호를 통해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공표했다.

2003년에는 연간 수출 100만대 돌파에 이어 2004년에도 세계 최단기간 수출 누계 1000만대를 돌파, 명실상부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미국 시장에서 2년 연속 J.D파워 소비자 만족도 1위(2002년 단독, 2003년 공동)에 이어 2004년에 신차품질의 세계적 척도로 불리는 신차 품질평가(IQS)에서도 1위(Entry Midsize car부문)를 차지함으로써 다시 한번 확인됐다.

2006년에도 포르쉐, 렉서스에 이어 3위를 차지하며 고급브랜드를 제외한 일반브랜드 순위에서 1위에 올라 전 세계에 현대차의 품질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미국 소비자전문지인 ‘컨슈머리포트’가 최근 발표한 내구성 조사에서도 현대차는 전년 대비 6계단 상승한 7위를 기록하며 미국 자동차업계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현대자동차는 세계적인 브랜드 평가기관인 인터브랜드가 비즈니스 위크와 함께 선정하는 세계 100대 브랜드에 2년 연속 선정되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2005년에는 평가가치 35억 달러, 84위에서 2006년에는 9계단 상승하며 평가가치 41억 달러 75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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