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외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구호 앞에 미국 기업들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다. 중국에서 공장이나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미국내 직원을 감원하려고 계획했던 기업들이 자칫 `반미(反美·anti-American)`라는 꼬리표라도 붙어 시달림을 당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1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미국 기업체 임원들과 월가 투자은행(IB) 뱅커, 위기관리 컨설턴트 등을 인용해 미국내 많은 기업들이 이런 불안에 빠져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트위터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제너럴모터스(GM)와 록히드마틴, 유나이티드 테크놀러지스 등은 물론이고 다른 미국 대기업들도 혹시나 다음 타깃으로 자신들이 지목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특히 해외에 제조공장을 가지고 있거나 미국내 인력을 줄이거나 제품가격을 인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필연적으로 인력 감축과 해외로의 생산기지 이동을 수반할 수 밖에 없는 인수·합병(M&A)을 추진하던 기업들이 행여 반애국적인 기업으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 딜을 늦추고 있다고 월가 IB 전문가들이 전했다. 실제 버뮤다에 본사를 둔 화이트마운틴 인슈어런스그룹은 본사를 조세피난처인 버뮤다로 옮겨 법인세를 피하려는 미국 기업에 회사를 매각하는 딜을 추진해왔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트럼프 당선 이후 부담을 느낀 유력 인수후보 기업이 이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유사한 이유로 조세피난처에 있는 보험사를 인수하려던 두 건 이상이 딜이 성사 직전 단계에서 깨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트위터를 주시하면서 자신의 회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전문가들에게 자문하거나 회사 입장을 대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방안을 강구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아예 전담팀을 만들어 트럼프의 트위터를 모니터링하기도 하고 PR 전문업체에 자문을 구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는 것. 미국 국방부에 대규모 방산제품을 납품하는 한 대기업 임원은 “트럼프와 맞설 계획은 없으며 즉시 (그의 발언을) 인정하고 그 레이더망 아래로 내려가 있으려고 한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