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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세이셸(Seychelles)에 간다고 주변에 말했을 때, 이 나라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은 "어딜 간다고?"라고 되물었다. 대화는 "인도양에 있는 제도(諸島)인데…"로 이어지다가 "그럼 발리 근처야?"라는 대꾸로 끊어졌다. 이런 지지부진 끝에 "아프리카 옆 마다가스카르 위에 있는, 115개 섬으로 이뤄진 나라"라는 나름의 모범답안을 마련했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각) 15시간 비행 끝에 착륙한 세이셸의 가장 큰 섬 마헤(Mah?)는 제주도만한 크기였다. 이 나라 총인구 8만1000명 가운데 90% 이상이 이 섬에 살고 있다. 나머지는 인근 프라슬린(Praslin)과 라디그(La Digue)에 흩어져있다. 115개 섬 중 세 곳을 뺀 대부분이 무인도인 셈이다. 해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커다란 화강암 덩이에 나무 한 그루 솟은 것도 섬이라고 했다.
세이셸 여행은 라디그에서 완성된다. 정북향으로 선 고구마 모양의 이 섬을 그림같은 해변이 둘러싸고 있다. 이 섬에서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대부분 찍었다고 한다. 영국 BBC가 세이셸을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으로 꼽은 것도, 관광안내서에서 '지구에 내려온 천국'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모두 이 작은 섬 때문이다.
마헤에서 20인승 비행기를 타고 프라슬린으로, 프라슬린에서 페리를 타고 15분 걸려 라디그의 제티(Jetty) 항에 닿았다. "마이 프렌드"하며 호객하는 남자에게 14달러를 주고 녹슨 자전거 한 대를 빌렸다. 이 섬에는 정부가 통제하는 차량 6대를 빼고는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관광객들은 소가 끄는 택시를 타기도 한다.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라 페달을 밟았다. 유럽에서 온 관광객들과 검은 피부의 현지인들 자전거가 수시로 엇갈렸다. 오르막이 나오는 듯 하더니 신나는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길의 끝에 그랑 앙세(Grand Anse) 해변이 있었다. 수심 40m까지도 육안으로 보인다는 바닷물은 너무나 맑아 오히려 낯설었다. 화강암이 잘게 부서진 희디 흰 모래는 미숫가루처럼 고왔다. 맨발로 파도 끝자락에 섰다. 물결 따라 발가락 사이를 들고나는 모래에 간지럼을 타 현기증이 났다. 여자친구와 함께 휴가 온 영국인 제프 암스트롱(38)은 해변에서 책을 읽었다. 그는 "며칠이라도 좀 느리게 살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했다.
자전거를 돌려 북쪽으로 향했다. 커다란 야자수가 늘어선 해변도로에 여행 트렁크만한 검은 물체가 있었다. 세이셸의 명물 자이언트 거북이었다. 땡볕에 축 늘어져 있는 놈을 사진 찍으러 가까이 가니 갑자기 목을 쳐들고 적의(敵意)를 드러냈다. 거북이가 느리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앙세 세베르, 르오션, 앙세 파타테…. 끊임없이 이어진 해변을 자전거로 가다 보니 관광 안내책자에 나온 사진 속을 달리는 것 같았다. 사진과 다른 게 있다면 토플리스 여인들이 뱃살 두둑한 중년이라는 점이었다.
세이셸의 마지막 밤, 어린 시절 우주도감에서 보았던 밤하늘을 보았다. 도감 한 가운데로 별똥별이 길게 꼬리를 빼며 떨어졌다. 서울로 돌아가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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