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러 원유 금수 결단…국제유가 200달러 갈까(종합)

미, 대러 원유금수 '최후의 보루' 카드
유가 120달러대서 매수세…시장 패닉
유럽, 추후 제재 동참 압박 받을 수도
고유가 직격탄…휘발윳값 '사상 최고'
골드만 "최악 공급 충격 직면할 수도"
  • 등록 2022-03-09 오후 1:45:41

    수정 2022-03-10 오전 2:33:29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결국 ‘최후의 보루’를 꺼내 들었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전격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는 주요 원자재 생산국인 러시아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지만, 동시에 유가 폭등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미국도 출혈이 불가피하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이를 잘 아는 러시아는 압박에 물러서지 않고 있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두 나라의 신경전에 유가는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월가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0달러 이상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러 원유 금수, 유럽 동참할까

바이든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 연설에서 러시아산 원유 금수 방침을 밝히면서 “동맹국들과 긴밀한 협의 이후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압박한다는 목표를 위해 우리는 단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조치는 미국의 독자적인 제재안이지만, 유럽 동맹국들과 논의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최후의 보루로 인식될 정도로 러시아 경제에 주는 피해가 클 전망이다. 주요 원자재 생산국인 러시아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러나 이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산 원유가 시장에 풀리지 않으면 수급 대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러시아의 통상 하루 원유 공급량(원유 관련 제품 포함)은 700만배럴에 가까운데, 이게 사라질 경우 대체지는 마땅치 않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진단이다. 이미 배럴당 140달러에 근접한 유가가 추가 폭등할 수 있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듯 “미국이 치를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 비중은 3%다. 휘발유 등 석유제품까지 포함하면 8%다. 미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는 없다.

에너지 자립이 가능한 미국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상황이 난처해진 건 주요 동맹인 유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많은 동맹국들이 함께 하지 못하는 걸 이해한다”고 말했다. 유럽 일부 나라들은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금지하면 곧바로 수급상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제재에 난색을 보여 왔다. 유럽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비중은 25%에 달한다. 천연가스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40%다.

영국만 이날 미국의 제재에 동참했다. 영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발표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크와시 쿠르텡 영국 산업에너지부 장관은 이날 “영국 수요의 8%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석유를 대체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 (사진=AFP 제공)


미국은 일단 유럽의 동참을 압박하지 않겠다는 기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원유 금수 문제는) 각국이 자체적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고,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은 CNBC에 나와 “동맹이 미국과 똑같은 조치를 하도록 압박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경제 제재처럼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게 쉽지 않다는 현실을 미국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승부수가 먹히지 않고 전쟁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상황은 바뀔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늘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반미를 고리로 러·중이 에너지 협력에 나설 경우 유럽은 금수 조치 압박을 받을 공산이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날 에스토니아를 방문해 “유럽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촉구한 건 그 연장선상에서 의미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와 관련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미러 신경전에 휘발윳값 폭등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강대강 대치로 ‘보통 시민들’의 경제적인 고통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3.6% 상승한 배럴당 123.70달러에 장을 마쳤다.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다. 장중 배럴당 129.44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수준인 배럴당 120달러 이상에서 매수세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원유시장은 사실상 패닉 상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배럴당 200달러 전망치를 제시했을 정도다. JP모건도 러시아산 원유 공급 차질이 계속되면 올해 안에 국제유가가 배럴당 18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에너지 공급에 있어 러시아의 중요한 역할을 감안하면 사상 최악의 공급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기준 미국 전역의 보통 휘발유 평균가는 갤런당(1갤런=3.785리터) 4.173달러를 나타냈다. 1년 전보다 50.4% 치솟은 수치다. 2008년 7월 기록한 이전 최고치(갤런당 4.114달러)를 단박에 뛰어넘었다.

휘발유 가격 오름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유가정보업체 OPIS의 톰 클로자 에너지 분석가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50~4.75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마저 이날 대러 제재를 발표하면서 “기름값은 더 오를 것”이라고 인정했다.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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