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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가난’은 가난한 봉제공장 여공인 ‘나’가 동거하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부잣집 아들인데 아버지 명에 따라 방학 동안 가난을 체험하러 왔다는 것을 알고 참담함을 느낀다는 이야기다.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싸’들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는 이 말이, ‘인싸’들의 유희의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소설 속 상황과 묘한 교집합을 이끌었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에서 보여준 재빠른 의사 결정 과정은 정치권이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전세계가 ‘전염병’에 신음하는 전대미문의 사태 속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발빠른 대응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내고 있다. 전세계 누구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한국이 앞장 서서 성큼성큼 인도하고 있다.
다만 그 지급 대상을 놓고 보여준 말바꾸기에는 여전한 의문이 남는다. 긴급재난지원금은 당초 소득 하위 50%를 지급대상으로 기획됐다가 70% 지급으로 처음 결정이 났고 4·15 총선을 거치면서 여야의 공약 남발 속에 100% 확대까지로 결론이 났다. 재원 마련에 대한 대책으로는?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자는 ‘신박한’ 발상이 나왔다. 기부마저도 정책의 수단이 되는 불쾌감이 뒤따른다.
복지의 대상을 정하는 데는 늘 갑론을박이 생긴다. 문 대통령도 보편적 복지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토론회에서 늘상 이재명 현 경기지사와 늘 맞붙었던 대목이다. 이 지사는 지난 3월 청와대를 방문해서도 100% 재난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말 긴급재난지원금 70% 지급을 알리면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쳤다”고 사족을 달았다. ‘70% 지급’ 결정으로 ‘불을 보듯 뻔할’ 논란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이 ‘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친 심사숙고의 과정이 총선 포퓰리즘 속에 무위로 돌아간 것이 일차적 문제다.
그런데 그 실수를 덮기 위해 ‘자발적 기부’ 카드를 꺼냈다는 것은 더욱 고약하다. ‘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쳐 70% 지급을 결정했던 문 대통령은 “기부는 자발적 선택으로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라고 했다. 그리곤 본인과 김정숙 여사의 몫 60만원의 기부 의사를 밝혔다. ‘아무거나 다 시켜. 난 짜장면’을 외치던 부장님이 된 것이다.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막아선 청와대의 대응도 수준 이하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관제 기부’ 비판 여론에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와 설전을 벌이면서 “존경스러운 국민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전술한 피해자는 존경스럽지 않은 국민인 것인지 되묻고 싶다.
정책에는 틈새가 생긴다. 이 틈새를 파고들면 편법이 횡행한다. 이 편법을 막기 위해 다시 정책은 촘촘해진다. 정책을 마련하는데 인간의 선의를 고려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마추어적이다. 자본주의에서 개인의 선택,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은 인간의 도덕적 선의와는 거리가 있다. 나랏돈 수십조를 쓰는 이번 정책에, 기부로 회수될 재원을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는 정책권자가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