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과 만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볼 시간을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원장 겸 교수와 마련해봤다.
박 교수는 만화 작가이자 비평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내 만화·웹툰 업계 전문가이다. 2002년부터 청강대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네이버를 비롯해 포털 웹툰 업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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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의 힘은 1945년 2차대전 패전후 일본 경제의 중흥과 연결지어 볼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거품 경제가 일본 출판 만화 업계를 성장시켰고 만화 작가들은 만화에 예술적 기교를 가미할 수 있었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국내 만화와 웹툰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전문을 다 실었다.
-누구나 자신의 그림이나 만화를 뽐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전문적인 만화 교육을 받지 않아도 웹툰 작가를 할 수 있을까.
△예전 출판 만화에서는 어느 정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웹툰과 비교해 과거 만화는 그림의 시각적인 정보의 양이 많던 시기였다. 90년대 극대화됐다. 그림의 퀄리티를 끌어 올렸던 시기다. 경이적인 벽이 존재했다. 예컨대 일본만화 같은 경우에는 이노우에 다케이코, 한국만화는 권가야 선생의 그림이 그렇다. 이들은 한 컷 그리는 데 일주일 씩 작업했다.
지금은 뭔가 이야기를 할 게 있고 웹툰이라는 방식으로 이를 풀어나갈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작년에 권혁주 교수님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웹툰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그 수업을 성수동에서 했다. 수강생중 어떤 한 분이 네이버 도전 만화에 계속 연재를 했다.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같은 측면에서 봤을 때 형식적 완성도와 허들이 90년대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아졌다.
어떻게 보면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창작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미지 언어를 활용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만화 교육이 있다면 대단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일본과 비교하면 아직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재가 덜 다양한 것 같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나왔다고 보나.
△90년대 작품으로 한정 짓는다면, 그리고 지금 현 단계의 작품도 출판 만화로 한정 짓는다면 맞는 말이다.
만화라는 것은 대중 문화, 대중 예술이다. 대중 예술은 본격 예술처럼 천재적인 작가가 경향을 만들어서 그 경향과 유사한 시대적 사조가 나오고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몇 가지가 시스템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시스템은 ‘대중적인 미감과 독자들의 미감이 어떻게 상호 조응 것이냐’이다. 이게 첫 번째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두 번째 시스템이 작동한다. 상업적인 구조가 이때 같이 움직인다. 쉽게 말해서, 본격 예술도 이런 콘텍스트적 상황과 밀접하지만, 대중 예술은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얘기다.
일본 같은 경우는, 40년대 일본이 패전하고 그 다음부터 끊임없이 만화를 갖고 발전시켜 나갔다. 내부에서 서로 ‘A’라는 경향이 나오고, A라는 게 안되면 B라는 게 나오고, 다시 합쳐지고. 이런 여러 가지 경향이 모이면서 폭이 넓어졌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나 ‘그림을 만들어가는 것’이나 모두 치밀하게 발전해갔다. 어떻게 보면 세계적으로 독특하고 뛰어난 만화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게 우리나라에 영향을 줘다. 일본만화는 50년대부터 꾸준하게 우리에게 영향을 줬다. 음으로 양으로. 나는 그게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가 영화를 못 만들 때 헐리우드 영화처럼 만들면 ‘누구 감독의 영화는 헐리우드 같다’고 하는 게 욕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옛날에 어느 만화가의 만화가 일본만화 같다고 하면 욕으로 생각했다.
사실 한국 영화 감독이 헐리우드 같은 때깔을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만화도 일본만화 때깔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나름 그 만화가가 노력했다는 것이다. 물론 대놓고 베낀 작가도 있었지만.
일본 출판 만화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던 때는 90년대 중반부터다. 90년대 일본 만화는 80년대 후반 거품 경제와 관련이 있다. 일본 만화 사업이 거품경제와 발전하면서 큰 돈을 버는 사업이 됐다. 그 와중에 그림에 극한을 추구하는 작가들이 등장했다. 출판사에서 흔히 말하는 PD시스템이라고 하는,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는 전문적인 시스팀이 시작했다.
돈이 많아지면서 한 작품에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었다. 이 돈은 단행본을 통해 충분히 뽑아낼 수 있었다. 돈이 투자되면서 작가의 입장에서는 ‘나도 그림의 퀄리티를 높이고 싶다’고 하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다보니까 그림의 배경을 굉장히 잘 그리는 풀아티스트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그림의 퀄리티가 올라갔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 나도 오토모 가쓰히로처럼 그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출판사에서는 돈이 많으니까. 그 돈을 갖고 하는 게 가능하니까. 덕분에 퀄리티를 끌어 올린 게 90년대 일본의 만화다. 퀄리티가 극한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국 만화는 이와 비슷하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에도 90년대 잡지 단행본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허나 시장환경은 일본과 달랐다. 물론 그 당시 많은 작품들이 인기를 얻어서 잘 팔리긴 했다. 그러나 거품경제 당시의 일본처럼 풍부한 유동성 속에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쪽(일본)에서는 풀어시스트로 돈을 들여서 했던 일을 이쪽(한국)에서는 문하생을 통해 해결했다.
다시 말해 한국 만화는 자본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90년대 짧은 전성기와 함께 시장 자체가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독자들이 좋아하는 특정 장르로 작가들이 몰리게 됐다. 국내 작가들은 90년대 학원물이나 판타지만화만을 주로 그렸다. 일본만화보다 소재적 확장이 굉장히 더디게 됐다.
웹툰 시대에 와 달라졌다.
웹툰이 인기를 끌었던 요인이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소재적 확장이 가능해진 데 있다. 아까 얘기한대로 극한에 이른, 적어도 ‘만화를 그리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해’. ‘배경은 이 정도 돼야해’라고 했었던 미묘한 분위기가 사라진 것이다.
웹툰 작가 만화들은 기존 출판만화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특히 2004년 강풀 이런 작가들이 웹툰의 새로운 장편 만화 시대를 열었다. 이들 작가는 이쪽의 문하생 경험이 없었다. 배경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출판만화는 정확하게 페이지와 칸이 정해져 있다. 이 때문에 압축이나 복선이나 만화적 연출에 굉장히 고심한다. 그것을 못하면 욕을 먹고 혼났다. 그런데 이 사람(강풀)은 스크롤이니까, 과거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신나게 그린 것이다. 압축이나 복선보다는. 스크롤해서 보는 만화가 훨씬 영상적 방법에 적합했다.
만화랑 웹툰은 굉장히 특성이 다른 매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중요한 형식적인 특징이 뭐냐면은 만화는 펼친 페이지, 칸이 고정돼 있다. 이런 고정돼 있는 페이지에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시각 정보를 배치하고 독자의 시선을 유도해서 일관된 이야기를 만든다. 즉, 좋은 만화 연출된 만화는 작가의 의도하고 독자의 시선이 똑같이 움직인다.
그런데 이쪽(웹툰)은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고 해도 스크롤 내리면서 어떤 칸을 볼지 모른다. 출판 만화는 내가 어떻게 시각 정보를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그림을 보게 만들 수 있다. 그러데 이쪽(웹툰)은 아무리 뛰어난 작가 할아버지가 와도 안된다. 디스플레이 환경이 다르고 스크롤 속도가 다르다. 보는사람에 따라서 다 다른 그림이 걸리는 셈이다.
예전의 방식으로 만화를 그리는 것보다 강풀의 방식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해 주면서 그리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강풀이 성공을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새로운 작가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이 새로운 작가들이 디지털 플랫폼 특유의 데뷔 시스템 ‘나도 만화가’나 그런 것을 통해서 자기 작품을 보여줬다. 독자들하고 커뮤니케이션하고 독자들의 반응을 기반으로 올라가고 하는 특유의 시스테을 통해서 성장한 작가들이 등장했다. 지금의 웹툰은 예전의 출판 만화에 비해서 훨씬 소재나 이야기가 다양해졌다.
△웹툰에 대한 오해가 굉장히 많다. 물론 만화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 분절된 이미지가 합쳐져 이야기가 전달되는 대원칙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디테일에 들어가서는 (웹툰과 만화는) 굉장히 다른 매체다.
이게 또 모호한 게 만화 역사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이 되는데, 완전히 새롭게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웹툰도 만화에서 분명히 영향을 받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출판 만화와는 매체적 성격이 굉장히 다르다. 작동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것을 자꾸 같은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나도 사실은 그것을 공부하고 깨닫고 하는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 나도 출판 만화에서 시작을 해서 출판 만화를 공부하고 비평하던 사람이다. 출판만화를 바라보던 방식으로 바라보면 “저런 말도 안되는 작품이 왜 있을까”라고 했다.
이 얘기는 어디 가서 강의할 때마다 하는 얘기이다. 처음에 조석의 ‘마음의 소리’를 단행본 내는데, 옛날에 잘 알던 출판사 친구 편집자가 이것을 냈다. 그 책을 냈다고 보여줬다. 그 때 했던 말이 “너는 나무한테 미안하지 않냐”였다. 농담삼아 얘기했다. 친하니까. 왜 그랬냐하면 조석의 마음의 소리 연재할 때 처음에는 아예 해상도를 72dpi로 해서 했다. 파일이 72dpi 정도 밖에 없었다. 72dpi로 책을 찍다보니 보기 안 좋았다. 나중에는 작업을 해서 해상도를 올려서 했다.
조석이란 이 친구는 철저하게 출판만화에서 어떤 미련과 영광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직 디지털 만화로써 시작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판 만화 입장에서 그걸 바라봤던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만화 입장에서 바라봤다면 조석이야말로 디지털로 창작하고 디지털로 생산해서 유통하고 소비하는 게 완벽하게 갖춰진 디지털 만화 생태계를 구성한 만화 작가다. 그 당시만 해도 작가들은 종이에다 스케치하고 종이에다 그리고 만화를 만드는 작가들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아직 있다.
그런데 조석이란 친구는 그것도 직접 디지털로 태블릿에다가 직접 그렸다. 직접 제작에 유통을 했다. 디지털로 완전히 소비가 끝나는 식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책으로 만드니 어색하고 안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완전히 다른 판이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실험을 하고 있다. 일단은 PC에 적합한 스크롤이란 것을 개발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스마트폰에 적합한 것이 무엇이냐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K툰, K웹이란 단어를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작의적인 것 같다. 사실은 웹툰이란 용어 자체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고 일반 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김치면 김치지 K김치는 아니지 않은가.
정부에서 이런 문화 산업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지원해주는 게 고맙다. 본인도 필요할 때는 혜택을 받기도 한다. 만화계가 혜택을 받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게 이 정책이 대부분 1년 단위나 2년 단위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계속 새로운 용어를 만든다.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야지 ‘어 괜찮네’하고 예산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게 길어봐야, 1차, 2차 3차 3개년으로 끝난다. K코믹스라고 해서 3개년 했다. 그리고 끝났다, 그러면 다른 용어를 고민한다. K툰 만들지 뭘 만들지 모르겠지만. 또 만들어서 또 해야 예산이 돈다.
내용이나 알맹이는 동일한 것이고 적합한 지원인데 계속 새로운 용어를 붙여서 모든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마케팅적으로 효과적이지 않다.
K코믹스 전에는 만화였다. 한글로 만화. 만화 다음에 K코믹스, K툰으로 바뀌고 있다. 외국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봤을 때는 ‘한국의 만화는 도대체 뭘까’ 생각할 것이다. 나 같아도 헷갈릴 것 같다. 만화였으면 만화로 가던가. 그리고 디지털 만화로 새로운 게 웹툰이라고 나가서 소개되고 꽤 인기도 끌고 이 용어를 사용했다. 어느 순간엔가 또 웹툰 대신 K툰 이렇게 (쓸까봐).. K자 좋아하니까. 이런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 웹툰이란 단어는 우리가 만든 것이니까, 웹툰 있고 만화 있고 하면 좋지 않은가.
-해외 웹툰 산업 현황은?
△아직 우리나라처럼 산업화되지 않았다. 일단 서구권의 웹툰은 뭐냐 하면 우리나라가 90년대 후반에 했던 방식처럼 개인이 하고 있는 것. 우리나라도 처음에는 웹툰 시작했을 때 90년대 후반에 스노우캣이라든지 마린블루스 같은 것이네 파페포포 같은 개인이 했었다. 스노우캣 같은 것은 자기 홈페이지에서 했었다.
서구의 유명한, 꽤 잘나가는 웹툰은 대부분 개인이 한다. 그네들 코믹스트립스 전통이 있으니까. 코믹스트립스 전통을 연결해서 보여주면 웹툰처럼 보여줄 것 같은데 그렇게 하는 것들이 있고.
산업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웹툰은 한국의 웹툰을 보고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진 게 있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 웹툰의 세계 진출 모델을 공유하는 것. 열심히 하는 곳이 네이버가 라인 웹툰을 갖고 하고 있다. 네이버는 라인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에 가서 그 지역의 현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본인 생각하기에는 웹툰 비즈니스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간다. 하나는 거대한 트래픽을 만들어서 거대한 트래픽에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 이게 네이버의 방식이다.
하나는 일정한 트래픽을 만들어서 유료로 독자들에게 수익을 창출하는 것. 레진, 탑툰이 했던 방식이다. 거대한 트래픽이라는 것과 일정한 트래픽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일정한 트래픽이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내가 유료화 시킨 사이트라면 10만명이 계속 구매해주면 정말 나이스한 것이겠지만 거대한 트래픽에서는 천만 단위로 올라가야 거기서 광고 수익 등이건 새로운 수익이 발생한다.
두 모형 다 트래픽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사실 옛날에는 잡지가 2만부, 3만부만 팔려도 큰 문제 없고 거기서 만화책 단행본들이 수익이 나오고 그림이 가능했다. 소량 생산의 구조가 가능했었는데 지금은 플랫폼 비즈니스로 넘어온 이상 기본적으로 트래픽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수익을 낼 수가 없다.
두 가지 갈래로 가고 있는데 라인 웹툰 같은 경우에는 얘기했던 거대한 트래픽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그러다보니까 자국에서 웹툰을 즐기는 독자가 나오고 자국에서 웹툰을 그리는 작가가 나오는 구조가 중요하다.
북미지역,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하고 있고 일단 적극적으로 그 지역에 그 언어를 쓰는 작가를 컨택해서 활성화하고 있는 단계다. 그렇게 활성화시킴으로서 트래픽이 올라가 거대해지면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자의 전략은 탑툰 같은 데가 대만에 가서 남성용 성인 만화를 팔아서 성공적으로 론칭하고 있고. 한국 웹툰의 유사한 모델을 보고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프랑스에 있는 자국인일 수 있고 한국인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웹툰 서비스를 만들어서 간 서비스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델리툰이라고. 프랑스 사람이 하고 있고. 몇 개 새로운 플랫폼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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