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터지는 소리에 숲이 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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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전남 완도 상황봉 숲
  • 등록 2008-02-28 오전 10:38:00

    수정 2008-02-28 오전 10:38:00


 
[조선일보 제공] 전라남도 완도에 가면 배시시 웃어도 좋다. 이름부터 '빙그레 웃는 섬', 완도(莞島)이니까. 완도 상황봉 숲에선 더욱 활짝 웃어도 된다. 반짝반짝 '특산품' 황칠나무와 사방오리나무가 밀림처럼 빼곡히 들어서고, 동백꽃도 머귀나무도 헤죽헤죽 미소 짓는 섬. 완도의 천연 숲 속으로 이른 봄 산책을 떠나봤다.

::: 완도 대표 미녀 황칠나무, 동백나무

완도 숲에 도착하면 일단 황칠나무부터 찾아보자. 전라남도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된 희귀종, 옛날사람들이 '신들린 나무'라고 부르며 땔감으로도 베지 않고 귀하게 여겼다는 황칠나무는 완도에 가장 많다. 왜 '신들린 나무'인고 하니 이유가 두 가지다. 먼저 잎 생김새가 특이하다. 황칠나무의 어린잎은 다섯 갈래로 갈라져 꼭 단풍잎 같다.

좀 더 자란 잎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더 자란 잎은 타원형처럼 한 덩어리다. 나이를 먹으면서 잎이 점점 단순해지는 셈이다. '겨울나무 쉽게 찾기'의 저자 윤주복씨는 "나이 먹으면 점점 더 둥글어지고 단순해지는 점이 꼭 사람 같다"고 했다. 황칠나무의 수피에서 나오는 노란색 수액도 특이하다. 이것을 '황칠'이라고 하여 옻칠과 함께 삼국시대 때부터 고급 도료로 썼다. 공예품에 칠하면 투명하고 아름다운 황금빛이 나서 장보고 시대 땐 당나라로 가는 무역 상품 중 최상급 제품으로 쳐줬다니, 겉보기에 소박하다고 얕볼 일이 아니다.

동백나무도 완도를 대표하는 나무 중 하나다. 따뜻한 지역의 해안이나 산림에 분포하는 이 나무는 2~4월에 붉은 꽃을 피우는데, 완도의 동백들은 벌써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허세 부리지 않는다'는 꽃말을 가진 나무답게, 숲 사이로 조심조심 얼굴을 드러낸다.

사방오리나무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남쪽에선 3월 무렵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나무다. '사방공사' 용으로 심는다 해서, '사방(砂防)' 오리나무라고 불리게 됐다는데, 그만큼 남쪽에선 흔한 나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남쪽의 대표 나무는 또 있다. 잣밤나무와 붉가시나무. 서울 도심의 플라타너스만큼이나 남쪽 숲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상록성 참나무다. 잣밤나무는 잣 크기의 밤이 매달린다고 해서 잣밤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잎사귀에 톱니가 난 것이 특징. 반면 붉가시나무는 잣밤나무와 매우 비슷하게 생겼지만 잎이 조금 더 크고 톱니가 없다. 뒤집어보면 뒷면은 노란빛을 띤 녹색을 띠는 것도 특징이다. 윤주복씨는 "남쪽에서 만나는 흔하게 생긴 상록수들은 잣밤나무, 붉가시나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도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먹지 마세요, 나무에 양보하세요

후박나무는 '후박엿'으로 유명한 나무. 흔히들 '울릉도 호박엿'으로 알고 있는 엿이 원래는 '후박엿'이었단다. 후박나무 열매는 녹색에서 담홍색으로 여문다. 이를 잘 말리면 박하처럼 은은한 향기가 난다. 애초에 울릉도에선 이 말린 열매를 갈아 엿을 만들었는데, 엿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후박 열매로는 감당이 안 되자 호박으로 엿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후박나무에겐 잘 된 일"이라며 윤주복씨가 웃었다.

노각나무도 눈에 띈다. 이름 그대로 '녹각', 즉 사슴 뿔을 닮은 나무다. 껍질이 꼭 녹용을 잘라놓은 모양으로 벗겨지지만, 먹을 순 없으니 욕심 내지 말자. 전 세계에 총 7종의 노각나무가 분포돼 있는데, 그 중 우리나라 품종이 가장 아름답다 한다.

::: 이 나무 이름이 뭐냐고? '이나무'라니까

윤주복씨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이 나무 이름이 뭔지 아세요?" "모르겠는데요." "이나무요…." "네? 모르겠는데요." "이나무라니까요."

머리 나쁜 탓에 그제서야 알아들었다. 이 나무 이름은 '이나무'다. 옆에서 제주도 출신 사진기자가 한 마디 거들었다. "제주도엔 먼나무도 있는데…." "맞습니다. 제주도에선 이나무를 '이낭'이라고 부르고, 먼나무는 '먼낭'이라고 부르죠."

제주도 사람들이 나무를 가리키며 "저건 먼낭?"(저게 무슨 나무야?)이라고 묻는 데서 먼나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이나무건, 먼나무건 나무 이름 한 번 재미있게 지었다.

::: 헤죽헤죽 웃는다, 머귀나무

윤주복씨가 불쑥 나뭇잎 하나를 따서 내밀었다. "비벼서 냄새를 한 번 맡아보세요." 향기가 참 그윽했다. 생달나무다. 잎맥이 뚜렷한 연초록빛 잎사귀가 아름답다.

호랑가시나무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카드에 꼭 나오는 육각형의 잎사귀를 지녔다. 외국에선 '홀리(holly)'라고 부르는데 '홀리(holy·성스러운)'라는 단어와 비슷하게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많다.

남도의 숲 그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머귀나무를 만났다. "잎자국 좀 보세요…." 아, 머귀나무도 잎자국이 꼭 사람 얼굴처럼 나 있다. "어머, 얘가 웃고 있네요?" "네 맞아요. 나무 중에선 제일 귀여운 얼굴을 갖고 있어요." 헤죽헤죽 귀엽게 웃는 머귀나무 앞에서 그만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맞아. 여긴 '완도'였지.


::: 어머, 돼지 닮은 나무다!

동물, 사람을 꼭 닮은 잎자국을 지닌 나무들은 생각보다 꽤 많다. 겨울이 완전히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가까운 숲에서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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