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랬구나!” 일상 곳곳에서 우리 삶을 지탱해 주지만 무심코 지나쳐 잘 모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침구, 종이, 페인트, 유리, 농기계(농업) 등등 얼핏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또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우리 곁에 스며 있지만 숨겨진 ‘생활 속 산업 이야기’(생산이)를 전합니다. 각 섹터별 전문가가 매주 토요일 ‘생산이’를 들려줍니다. <편집자주>[김선령 KCC 프로] 나는 카레를 좋아한다. 특히 데우기만 하면 밥과 함께 바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액상 레토르트카레를 좋아한다. 최근 카레를 사서 종이 포장을 뜯고 은색 파우치를 집어 든 순간 손에서 느껴지는 파우치의 느낌은 평소 익숙했던 물컹함이 아닌 딱딱함이었다. 아차 싶어 살펴본 카레는 액상 레토르트가 아닌 가루 카레였다. 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야 하는 가루 카레…물론 이것도 맛있지만 나는 직접 요리하는 재미보다 편리함에 더 비중을 두는 편이다.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집어 든 나의 경솔함을 탓하며 그날은 그냥 밥과 밑반찬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밥을 먹으면서 왜 인지 분체도료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카레를 보면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인 분체도료를 떠올린 게 왠지 열심히 하는 직원 같아서 스스로 대견한 느낌이었을까?
| 분체도료 (사진=KC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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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페인트라 불리는 ‘도료’를 떠올리면 대부분은 사람들은 끈적한 액상 형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가루로 된 페인트가 있다. 바로 분체도료다. 포털에서 분체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 보면 ‘고체 입자가 많이 모여 있는 상태의 물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 물체를 형성하고 있는 입자의 크기에 따라, 0.1 마이크로미터(㎛) 이하를 콜로이드, 0.1~1㎛를 미분, 1~100㎛를 분체, 100~1,000㎛를 조분, 1,000㎛ 이상을 입체라 한다.’라고 설명돼 있다. 즉 분체도료란 1~100㎛의 입자로 이루어진 도료, 쉽게 말해 가루페인트란 뜻이다.
카레도 액상 레토르트와 가루 카레가 있듯이 도료도 액상과 가루 페인트가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분체도료는 휘발성 용제(다른 물질을 녹이기 위해 사용하는 신나와 같은 액체)나 물과 같은 희석제가 들어있지 않은 가루 형태의 도료로, 다양한 무늬 구현이 가능하고, 도막(도료를 도포하여 형성되는 피막) 형성 시 주름이 생기거나 흘러내리지 않아 도장 작업성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다.
예전 친구에게 분체도료를 설명해 줬더니 깜짝 놀라며 “가루 페인트라니 진짜 신기하다. 근데 어떻게 발라?”라며 궁금해하던 것이 생생하다. 분체도료는 붓이나 롤러가 아닌 정전 스프레이 건을 사용해 도장한다. 정전기를 이용해 도장하려는 물체(+, 양전하)에 도료(-, 음전하)를 달라붙게 스프레이로 뿌린 후, 열을 가해 코팅을 하면 여러 번 칠할 필요 없이 한 방에 도장(페인트칠)이 끝난다. 정전 인력으로 붙인 거라 인위적으로 제거하지 않는 한 도료가 떨어질 걱정이 없으며, 회수하여 사용이 가능해 작업 과정에서 낭비되는 양과 폐기물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분체도료는 생소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의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냉장고나 세탁기 외관, 자동차 휠이나 엔진블럭과 같은 자동차 부품, 건축자재/전자제품, 농기구 등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내식성이 뛰어나 가스관이나 수도관 같은 각종 강관에 분체도료로 도장해 30년이 지나도 장기간 녹이 슬지 않도록 하거나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예쁜 색깔만 입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KCC는 1979년 국내 최초로 가루멜이라는 분체도료를 개발했으며, 지난 해 7월에는 전자제품 내부 열을 분산하고 외부로 방출해, 기기가 가열되거나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오작동 방지 및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열 분체도료도 개발해 특허 등록 완료했다.
그동안 업무로 대할 땐 몰랐지만 카레 가루를 통해 떠올린 분체도료가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왠지 오늘은 레토르트 액상이 아닌 직접 가루와 야채, 고기 넣고 요리한 카레를 먹고 싶다.
| 김선령 KCC 프로 (이미지=김정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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