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하나로 친구가 되는 곳… 오~ 당신도 맨유 팬입니까?

축구마니아를 위한 영국 맨체스터&리버풀 여행
프리미어리그 투어-맨체스터
  • 등록 2008-01-24 오전 10:40:00

    수정 2008-01-24 오전 10:40:00

[조선일보 제공] 길어야 일주일인 여름 휴가, 짧으면 연휴에 주말 붙여 4일만에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우리에게 절실한 건 '선택과 집중'입니다. 비행기 타고 머나먼 도시에 떨어져 이것저것 다 보려 하다 보면 어느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돌아오게 되곤 하지요. 주말매거진이 옥션여행(tour.auction.co.kr)과 함께 똑똑하고 멋진 여행을 위해 새 해외여행 시리즈 '컬처 투어(Culture Tour)'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스포츠('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장), 미술(화가 반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서), 공연(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학(일본 간사이 문학 기행), 역사(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고성(古城) 산책) 등 마음을 풍성하게 해주는 '문화'에 초점을 맞춰 한 도시를 '짧고 굵게' 공략하는 '여행 전략'을 짜보는 건 어떨까요.

▲ 맨유 수비수게리 네빌의 500경기 출전 기념유니폼 .‘ 축하해요!’라고 한글로 쓴 박지성의 싸인이 보인다

"와우, 너 맨유 팬이야? 경기 끝내줬지? 정말 정말 최고였어!"

맨체스터 시내를 가로지르는 지상 열차인 트램에 겨우 끼어 타고, 빗물에 씻겨나가 '재앙'이 된 마스카라를 하나 하나 닦아 내고 있는 참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뉴캐슬 경기가 열린 지난 12일. 경기 뒤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에 속옷까지 젖어버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처음 보는 외국인들이 괜히 친한 척이다. 맨유 마크가 달린 모자에 머플러로 중무장한 것도 아닌데, 낯선 이에게 왜 그리 무한한 '동질감'을 느끼나 했다. 가방 속 물건들이 젖을 것 같아 맨유 마크가 그려진 커다란 봉투에 넣어 뒀더니 그런가 보다. 못 들은 척하며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가끔 거나하게 취한 무리들이 치기를 부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이 적힌티셔츠를 입고 응원을!

'아뿔싸!' 옆자리 사람이 일어선다. 그 '친한 척 외국인'이 냉큼 옆자리를 차지했다. "너 한국 사람이지? 아까 네 동료들이랑 이야기하는 거 듣고 알아챘지. 나 뉴욕 살 때 한국 친구가 많았거든!" 살짝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니 취한 것 같진 않았다. "아일랜드에서 이번 경기 보려고 친구들하고 같이 왔지. 저 친구는 스페인 출신이고, 쟤는 아르헨티나 애야. 경기 때마다 비행기 타고 오는 거지 뭐. 그만큼 가치가 있잖아!"

20살짜리 '수다맨'의 이야기는 그치지 않았다. "나 테베즈 진짜 좋아하거든. 오늘 골 넣는 거 봤지? 정말 환상적이었어. 넌 누구 좋아해?" 누구라고 이야기 하기도 전에 "뻔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지? 여자들은 다 걔 좋아하더라"며 혼자 결론까지 내버린다. 그가 응원가를 먼저 부르니 주변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트램 안은 어느새 경기장이 돼 버렸다. 어느덧 경계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 분위기에 취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낯선 이도 금세 친구가 될 수 있는 곳, 바로 맨체스터다.

▲ 리버풀 앤필드경기장 입구에 있는 빌 생클리 前감독. 감독 동상.

맨유 선수들의 단골 식당인 '윙스'를 찾으려 했더니 파티가 있다며 전석 예약이 끝났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도 이틀 전에. 요즘 맨체스터에서 뜬다는 '삿포로 데판야키'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렸다. 밤 9시도 채 안 된 시각이었는데 "100여 좌석이 꽉 차서 11시까지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티 근처에서 국수 전문으로 유명한 '와가마마'도, 스페인 음식 전문점인 '라 타스카'도 유명 체인점인 '벨라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토요일 오후 5시 경기였던 걸 감안하지 않은 게 실수였다. 7만여명의 관중이 경기 끝나고 줄줄이 잘 나간다는 음식점으로 향했으니, 여기도 만원, 저기도 만원인 게 당연한 일.

이쯤 되면 '모험'을 택할 수밖에. 맨체스터에 왔으면 꼭 한 번쯤 가봐야 할 곳, 바로 '게이 마을'(Gay Village)로 발길을 돌렸다. 맨체스터 유명거리인 캐널 스트리트(Canal Street)에서 5~10분 걸으면 도착한다. 동성애를 뜻하는 무지개색 깃발이 드리워져 있고, 여자보다 예쁜 남자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여장을 하고 있는 남자 동성애자인 드래그 퀸(drag queen)이 한껏 모델 같은 자태를 뽐낸다.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갑자기 쇼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도시는 새까만 어둠에 묻혔지만, 이곳의 조명은 꺼질 줄 모른다. 맨체스터의 밤은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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