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기 수원시 무궁화전자에서 만난 김기경(54) 대표는 삼성전자에 의존하던 회사의 체질을 자립할 수 있는 ‘기업다운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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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전자는 1994년 ‘일 할 능력이 있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삼성그룹이 만든 사회복지법인소속 시설이다. 2001년에 이곳과 연이 닿은 김기경 대표는 2011년 무궁화전자의 세 번째 대표로 취임해 경영 중이다.
1984년 삼성전자 엔지니어로 입사한 김 대표는 13년을 삼성맨으로 지냈다. 다양한 분야를 거쳐 중국법인서 근무하던 그는 1997년 9월 오랜 타지근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얼마 안 있어 외환위기가 터졌다. 그 여파로 김 대표는 삼성전자를 떠난다.
삼성전자서 나온 김 대표는 식당과 주식 투자로 인생 2막을 열었다. 그의 인생 2부는 나름 성공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한 번의 투자 실수로 집 한 채를 제외한 모든 것을 날리게 된다.
김 대표는 “그 일 이후로 1년의 시간을 낚시로 허비했다”고 돌이켰다. 이후 정수기 영업사원까지 손을 댔던 그를 구원해준 것은 삼성전자서 함께 일했던 동료였다. 그는 “공석이던 무궁화전자 관리과장 자리를 같이 일했던 임원이 추천해줬다”며 “솔직히 사회복지에 대한 개념보다도 사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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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무궁화전자에서 인생 3막을 시작한 김대표는 처음 공장을 둘러본 뒤 충격을 받았다. 그는 “막상 돌아보니 일거리가 없었다”며 “그나마 있던 일도 바이오드에 튜브를 끼는 아주 기초적인 작업뿐이었다”고 무궁화전자의 첫인상을 설명했다.
이때까지 무궁화전자는 그해 적자를 삼성전자에서 보전해주는 형식으로 운영했다. 정상적인 기업이라고 보기 어려운 형태였다. 김 대표는 “회사 설립 8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삼성전자에 도와달라고 하기도 힘들었다”며 “삼성전자가 언제까지 국내서 소형가전을 생산할지도 미지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자생력을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김 대표는 삼성전자와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했다. 20억원을 들여 SMT(표면실장기술) 자동화 라인을 설치했다. 그는 “(주변에서) 장애인 공장서 이걸 운영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당장 매출이 일어나는 게 급선무였다”며 삼성전자를 설득했다. 김 대표의 예언은 적중했다. 24시간 운영할 수 있는 장치산업인 SMT는 무궁화전자 경영 정상화의 씨앗 노릇을 했다.
김 대표는 경영 정상화에 계속 박차를 가했다. 무궁화전자는 그간의 단순 무선청소기 하청 생산을 넘어 삼성전자와 함께 개발한 제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2003년도에는 설립 당시부터 대기업이 만든 사회복지법인이란 이유로 받지 못했던 ‘정부시설운영지원금’을 받아낸다. 그해 설립 이후 처음으로 7억6000만원의 흑자가 났다.
2007년도에는 삼성전자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이 아닌 무궁화전자 자체 브랜드로 무선청소기를 내놓는다. 2004년 매출액 100억원을 넘긴 무궁화전자는 2007년 120억원의 매출을 달성해 자생력을 갖춘 기업으로 한 걸음씩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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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그간 사출을 계속 구매해서 사용했는데 급한 공정 변경 사항이 있으면 제때 제품을 받기 힘들었다”며 사출설비를 설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무궁화전자는 사출부터 조립·SMT까지 모든 생산이 한 번에 되는 ‘올인원’(All in one)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최근에는 홈쇼핑을 통해 무궁화전자의 무선청소기를 인기리에 판매하고 있다. 공영홈쇼핑을 통해 판매되는 무궁화전자 무선청소기는 방송에 선보인 지 10개월 만에 3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홈쇼핑 대표 상품으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무궁화전자의 매출액은 200억원. 올해 목표는 230억원이다. 삼성전자에만 의존하던 이전 무궁화전자의 포트폴리오도 현재 삼성전자 60%, 비삼성전자 40%로 바뀌었다.
김 대표의 꿈은 매출액 1000억원이다. 그는 “지난해 우리나라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2.6%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매출액 1000억원을 달성해 650명의 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