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한 세상에 더 독한 얘기를 원하십니까

영화 `킹콩을 들다`
  • 등록 2009-07-03 오후 12:50:00

    수정 2009-07-03 오후 12:50:00


[경향닷컴 제공] 무더운 오늘 점심으로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혹시 뜨끈뜨근한 국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번주 개봉작 <킹콩을 들다>는 실화에 바탕한 영화입니다. 2000년 전국체전에서 총 15개의 금메달 중 1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가져간 시골 고등학교 소녀 역사들의 이야기가 모티브입니다. 88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했다가 부상으로 동메달에 그쳐 실의에 빠진 역도선수 이지봉(이범수)은 몇 년 뒤 시골 여중의 역도부 코치로 부임합니다. 허송세월하던 지봉은 소녀들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받아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합니다. 소녀들은 곧 재능을 발휘하지만, 세상은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킹콩을 들다>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같은 스포츠 영화이자, <몽정기> 같은 성장 영화이며, <언제나 마음은 태양> 같은 교사 영화입니다. 모두 잘만 만들면 대중의 웃음보와 눈물보를 함께 자극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결과적으로 <킹콩을 들다>는 괜찮은 대중영화가 됐지만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불굴의 운동선수였으며 정 많은 스승인 이지봉을 부각시키기 위함인지, 제작진은 아이들이 고교에 진학한 뒤 새로 만난 코치를 엄청난 악당으로 묘사했습니다. 이지봉에게 질투를 느끼는 그는 이지봉의 옛 제자들을 학대합니다. 소녀들의 허벅다리에 무시무시한 방망이질을 해대고, 인격 모독도 서슴지 않습니다. 제작진은 관객의 거부감을 우려해 과도한 장면을 다소 들어냈다는 후문이 있지만, 보기에 불편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대학 농구부의 폭력 사태 소식이 들리는 마당이니, 1990년대 초반 시골 학교 운동부였다면 그런 폭력과 욕설이 남아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영화가 아무리 실화에 근거했다 하더라도, 일어난 사실을 고스란히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극(劇)보다 극적입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은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입니다. 제가 기자가 된 뒤 안 사실은, 세상엔 너무나 흉하고 끔찍하고 무섭고 추해서 차마 기사로 옮길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으나, 아직 국내엔 개봉 시기만 저울질하고 있는 체 게바라의 전기영화 <체>가 떠오릅니다. 이 영화 속의 게바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낭만적인 혁명 전사가 아닙니다. 멋진 총격전도, 아름다운 로맨스도 없습니다. 뜨거운 연기로 유명한 주연 베니치오 델토로는 때론 무성의하다 싶을 정도로 건조하게 게바라를 재현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이 길고 지루한 268분짜리 영화에서 엄청난 열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킹콩을 들다>의 제작진은 관객을 진하게 울릴 만한 ‘독한’ 얘기를 원했을 겁니다. 극장에서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영화를. 그러나 우리 사는 세상은 이미 충분히 독합니다. 지금 여기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하드코어, 익스트림, 막장 블록버스터 신작이 매일 개봉 중입니다. 뜨거운 세상에 뜨거운 국물을 대접할 생각일랑 제발 거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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