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환율 카오스]②"트럼프의 '마이웨이', 시장 뒤흔든다"

  • 등록 2017-02-09 오전 8:40:03

    수정 2017-02-09 오후 6:24:43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됐던 지난해 11월9일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의 모습.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경계영 기자] “180 보트(bought·매수).” “4.0 던(done).”

낯선 숫자와 영어가 오가는 이 곳은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본점 2층 딜링룸. 지난 7일 오후 3시께 난방이 가동되기도 했지만 모니터가 기본 4대 이상 올려진 책상들에서 나오는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딜러는 기업 등 고객을 담당하는 딜러와 다른 시중은행과 거래를 맡는 은행 간(inter-bank) 딜러,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은행 딜링룸은 대고객 딜러와 은행 간 딜러 각각의 분단이 따로 갈려있다.

대고객 딜러가 기업 재무 담당과 연결된 핫라인을 통해 A 기업이 1억8000달러를 팔겠다는 전화를 받으면 딜링룸에 큰 소리로 알린다. 삼성전자(005930) 현대차(005380) 등 기업이 수출하고 달러화로 받은 대금을 시황에 따라 원화로 바꾸려 은행에 주문을 넣는다.

이를 들은 은행 간 딜러는 지금 거래가격을 “4.0”이라고 말해준다. 달러당 1144.0원이라고 다 말하지 않고 소수점 한 자릿수까지 끝의 두 자리만 통상 얘기한다. 이후 “done”이라고 말하면 거래가 이뤄진 것이다.

이걸로 거래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은행은 A 기업으로부터 1억8000만달러를 샀으니 이제 1억8000만달러 전액을 팔거나 일부를 팔아 포지션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도 손도 동시에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0.1초의 승부사.’ 외환딜러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시장 ‘만드는’ 외환딜러…트럼프 쳐다본다

서울외환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시장을 만드는 것은 외환딜러의 몫이 크다. 일반인이 직접 투자하고 거래하는 주식, 채권 등 다른 금융시장과 달리 외환은 그 특성상 은행으로만 참가 자격이 제한돼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환전할 땐 은행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시장을 순간적으로 읽고 판단하는 감각을 길러온 이들에게도 최근 외환시장 흐름은 어려운 ‘숙제’다. 연초엔 새해를 맞아 포지션을 새로 설정하는 등 거래가 활발해지고 변동성이 커지는 경향을 고려하더라도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근철 SC제일은행 외환파생상품운용부 상무는 “환율이 펀더멘털(기초체력)이나 수급에 따라 움직인다면 비교적 원활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올해는 미국 정책당국자의 발언 한 마디에 요동치고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다보니 지난 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올랐다가도 미국, 유럽 등 영향을 받아 밤새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에서 큰 폭으로 내려 6일 10원 넘게 하락 출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 때문에 일간 변동 폭은 지난달 하루 평균 7.1원으로 지난해 3월(7.7원) 이후 가장 크게 벌어졌다.

실제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 통화가 달러화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낸 달러인덱스는 한달 전까지만 해도 14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지만 상승 폭을 모두 반납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정책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 데다 환율조작국 지정 등 잇단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지면서다.

올해 최대 변수 또한 지난해 말부터 시장을 흔들어온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장원 신한은행 과장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요소가 시장을 좌지우지한다”고 말했다.

고상준 씨티은행 외환파생운용부장도 “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의 경기부양 기대감과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에 따른 달러화 강세 기조가 올해의 주요 테마”라며 “수급상 국내 주식·채권시장에서 외국인 자본 이탈로 이어질 지도 관심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주시하는 지표로는 미국의 물가상승률과 국채 금리, 달러인덱스, 중국 위안화, 수급상 외화예금과 NDF 동향 등이 꼽혔다.

트럼프 ‘보호무역’…“韓 경제 불확실성 키워”

트럼프 대통령이 확실하게 제시한 정책인 보호무역이 원·달러 환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서는 딜러 개개인 간 의견이 갈렸다. ‘마이 웨이(My way)’를 걷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고려하면 보호무역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딜러 상당수가 미국 환율보고서가 나오는 4월께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B은행 외환딜러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내놓을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과도하게 쏠림이 있어도 대처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환율조작국 지정이 아니더라도 협상 과정에서 우리 측에 불리한 것을 수용하라는 요구를 내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C은행 외환딜러는 “이럴 경우 환율이 오버슈팅하면서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을 위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비해 D은행 외환딜러는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우리나라 수출업체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오히려 환율이 오를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대내적으로도 정치 불안이 높아 원화가 강세로 가긴 어려울 것”이라며 “달러당 1180원 상단을 다시 찍을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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