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한 술을 위해… 밥 뜸들기만 기다렸다

飯床三盜 <반상삼도>
  • 등록 2008-12-04 오후 12:00:00

    수정 2008-12-04 오후 12:00:00

[조선일보 제공]
장아찌… 독 속에 은둔하는 동안 스스로 깨달아 나온 자들. - 윤대녕 '어머니의 수저' … 밥과 먹으면 왜 또 그렇게 맛있는 걸까. - 아베 야로 '심야식당'
김치… 미미천만(美味千萬)이니 딴것과 바꾸지 못한다. 천상병 '친구3-김치'

상을 그득 채운 반찬, 솔직히 필요한가요. 제대로 된 찬 하나면 밥 한 그릇이야 금방 넘어가죠. 이번 주 주말매거진은 한국 사람 밥상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인 장아찌·김치·김으로 차렸습니다. 우선 짜다고 군내 난다고 구박받다가 '웰빙 전통식품'으로 돌아온 장아찌부터 소개합니다.

|밥도둑 삼자대결| 一盜. 장아찌

전남 담양 고읍리. 가을걷이가 끝난 벌판, 볏단 태우는 연기가 비스듬히 하늘로 올라간다. 오후의 햇볕이 쏟아져 초겨울이지만 춥지 않다. 그 넉넉하고 한가로운 남도의 풍경 가운데 '전통식당'이 있다. 가옥 3채와 돌담에 둘러싸인 안뜰 장독대에는 크고 작은 독 수십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구수하고 달착지근한 간장과 된장, 고추장 냄새를 맡은 벌과 파리가 독 주변을 왱왱거린다.

고추장 독에 박혀 있던 무 장아찌가 상에 올랐다. 겉은 불그스름하고 속은 검으면서도 말갛게 반투명하다. 2년은 숙성시킨 장아찌라는데 아직도 아삭하다. 맵고 짠맛이 폭 배어 깊이가 있다.
▲ 전남 담양‘전통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 국과 밥부터 시계 방향으로 굴비·마늘종·무·양하장아찌. 가운데는 묵은지. 밥상은 촬영용으로 연출한 것이다


장아찌는 '장아'라는 한자어와 김치를 뜻하는 '지'가 더해진 말이다. 장아는 간장, 고추장 같은 장을 말한다. 지는 간에 절인 채소를 일컫는 옛말 '디히'에서 왔다. 옛 문헌에는 장아찌를 '장앳디히'라고 했다. 간장이나 된장, 고추장 따위 장에 넣어 절인 채소라는 뜻이다. 장앳디히가 '장앗디히'로 '장앗지이'로 변하다가 장아찌가 됐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 넘게 걸리는 담양까지 내려간 건 여럿이 '장아찌뿐 아니라 원래 그대로의 한국음식을 맛보려면 전통식당에 가보라'고 입을 모아 말했기 때문이다. 주인 윤해경(71)씨는 "어려서부터 본 대로 만들 뿐 특별히 장아찌 만드는 법을 배우진 않았다"고 했다. "옛날 밥술이나 먹는 집에는 손님이 많이 왔어요. 저희 아버지도 손님을 많이 들이셨죠(윤씨의 아버지는 고산 윤선도의 10대손이다). 장아찌만 있으면 손님들이 오셔도 얼른 밥을 낼 수 있으니까 그런 걸 준비해 놓더라고요." 손님이 들이닥쳤을 때 급히 내놓을 수 있는 음식. 장아찌는 '한국 전통 패스트푸드'인 셈이다.

하지만 윤씨가 설명하는 장아찌 만드는 법을 들어보면 느려도 보통 느린 슬로푸드가 아니다. "장아찌 중에서 가장 하기 쉬운 게 무 장아찌예요. 지금이 할 때예요. 딱딱한 가을무라야 돼요. 무를 두껍게 썰어서 간장을 너무 짜지 않게 적당량 부어놔요. 저희는 메주로 직접 담근 조선간장을 써요. 무에서 그렇게 물이 나올 수가 없어요. 한 달 정도 담갔다가 건져서 고추장에다 박아요. 무를 넣고 고추장을 넣고 켜켜이 담아요. 겨울 지나고 봄에 보면 물이 흥건해요. 고추장을 훑어 버리고 새 고추장에 박아요. 세 번 정도 박아야지 제맛이 나요. 반복 세 번 하면 무 색깔이 가무스름하면서 말갛죠. 마지막에는 조청도 넣어요. 조청도 직접 고아서 쓰지요. 2년 정도는 (고추장에) 넣어야 맛이 들어요." 세상에, 이게 가장 쉬운 장아찌라니.

▲ 김

윤씨가 매년 준비하는 장아찌는 무, 더덕, 굴비, 마늘, 마늘종, 양하 등 예닐곱 가지다. 무와 더덕 장아찌는 가을에, 마늘은 봄에 만든다. 양하는 생강과 여러해살이 풀로 따뜻한 한반도 남쪽에서 나는데, 음력 8월 추석 무렵에 난다. 굴비장아찌는 바싹 마른 보리굴비를 머리 떼고 껍질 벗겨 통째로 고추장에 박아 적어도 2년 보통 3년 숙성시켜야 굴비 속까지 간이 밴다. 굴비를 찢어서 고추장에 버무린 요즘 '고추장장아찌'와는 꽤 다르다. 더덕도 고추장을 두 번 갈아가며 2년 정도 박아둔다. 나머지 장아찌는 간장으로만 만든다.

재료나 만드는 방법이나 옛날과 같다지만 아무래도 덜 짜다. 건강을 따지는 요즘 사람들, 짠맛이라면 아주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전에는 무 장아찌 할 때 소금 뿌려가지고 물 뺀 다음 간장에 담갔다가 고추장에 박았지만, 요즘은 소금 뿌리지 않고 간장에 담그니까 훨씬 덜 짜죠."

장아찌를 좀 사겠다고 했더니, 팔지는 않는다고 한다. "1㎏이라고 해봐야 장아찌 세 덩이나 될까요. 그런데 고추장을 세 번이나 버리니까 꽤 받아야 하는데(몇 년 전까지 ㎏당 1만5000원을 받았다), 비싸다고 다들 놀라요. 요즘은 식당에서 쓰는 것만 해서 쓰지요."

냄새 난다고, 짜다고 외면하는 이들도 있지만, 장아찌는 요즘 더 인기다. 대표적 슬로푸드면서 불에 익히지 않은 생식이란 점이 부각되고 있다. "요즘 많이 찾데요. 많이들 이렇게 해 먹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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