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7일) 개봉한 이 기품 있는 러브 스토리는 기억이 사라졌을 때 사랑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묻는다. 목소리는 상냥하지만 질문은 잔인하다. 스물 아홉 여성 감독 사라 폴리(Polley)와 예순 일곱 여배우 줄리 크리스티(Christie)가 공들여 빚어낸 삶의 아이러니. 70대의 이야기지만 70대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상투적으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활력을 찾는 건 요양원의 최초 면회 금지기간이 풀린 이후다. 기억을 잃더라도 품위까지 잃을 수는 없다는 절박함으로 치매에 걸린 아내가 선택한 시설. 44년간 단 한 번도 그녀를 떠난 적(away from her) 없던 남편에게는 처음 있었던 강제 격리다. 한 달 동안의 짧은 이별이 끝난 후 사랑과 기억의 함수관계에 관한 슬픈 진실이 입증된다. 남편을 망각한 아내는 요양원에서 만난 환자와 새로운 사랑을 쌓는다. 그것만으로도 딱하고 답답한데, 이 영화를 볼 관객을 위해 언급을 참아야 할 몇 번의 사건과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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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이상 관객에게 줄리 크리스티는 '닥터 지바고'(1965)의 라라였지만 이제 그녀는 '어웨이 프롬 허'의 피오나로 기억될 것이다. 영화에서 남편 그랜트는 아내 피오나를 이렇게 묘사한다. "직설적이면서도 모호하고, 달콤하면서도 아이러니한 사람"이라고. 영화 속 그녀는 이 모순적 문장을 고스란히 살아낸다. 남편에게 사랑과 우정과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배신을 동시에 선물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는 여전히 소녀 같은 눈동자를 반짝이는 여인. 말하지 않는 순간이 어쩌면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배우. 아쉽게도 오스카는 그녀를 외면했지만 골든글로브는 그녀를 선택했고, 동료 배우들 역시 기품 있게 늙어가는 선배를 올해 배우조합 여우주연상의 주인공으로 뽑았다. 유머와 넉넉함을 지닌 그랜트 역 고든 빈센트의 연기도 차분한 조화를 이룬다. 캐나다 아역 배우 출신 여성 감독 사라 폴리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성숙함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눈부신 설원을 향해 두 발을 내딛는다. 기억은 점점 사라지는데 발자국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하다. 무수히 많았던 사랑의 기억들이 형형색색의 지느러미를 흔들며 시간의 물살을 타고 흐른다. 하지만 그 물살에서 뒤처진 기억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웨이 프롬 허'는 그렇게 삶과 세계에 관한 비의(秘意) 한 타래를 조용히 감는다.
줄거리
전문가 별점
―젊고 지적인 여성 감독이 돌아본 삶의 뒤안길. 뜨겁다! ★★★★
황희연·영화칼럼니스트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내를 그려서가 아니다. 말년의 삶을 진심 어린 눈으로 응시한다는 것의 매력. ★★★
이상용·영화평론가
기억이 사라지면, 사랑도 지워질까. 줄리 크리스티와 고든 빈센트의
연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어웨이 프롬 허'는 올 봄, 필견 영화중의 하나다.
/어수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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