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씨가 애타게 기다리는 이는 남편 전규명(86) 할아버지. 1950년 6.25가 터지면서 북한 의용군에 강제 징집돼 그해 포로로 잡혀 생이별을 했던 ‘신랑’이었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65년만에 만난 노부부는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몇 시간 같은 5초간의 정적을 먼저 깬 건 남편이었다. 전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고쳐 쓰며 정중하게 “나 전규명이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한 할머니는 수줍은 듯 “나는 한음전”이라고 새초롬하게 답했다. 꽃다운 나이 선남선녀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말이다.
65년만에 ‘신부’를 만난 전 할아버지는 “아, (옛날) 그대로 이쁘네”라며 한 할머니의 손을 꼭 쥐었고, 아내 역시 조용히 남편의 손을 포개 잡았다.
아내의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이제 죽어도 원이 없다”는 전 할아버지에게 한 할머니는 같이 온 아들 전완석(65)씨를 소개했다. 남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후 석달만에 홀로 낳은 아들은 이제 환갑을 훌쩍 넘겨서야 아버지와 처음으로 만났다.
아들 전씨로부터 헤어진 후 한 할머니가 홀로 아들을 키우며 재혼도 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전 할아버지는 “그렇게 고왔는데… 왜 결혼 안 했어”라며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을 비쳤다.
사진 한 장도 남기지 못 하고 갑자기 사라진 남편을 기다리며 외롭게 버틴 지난 세월이 한 할머니의 머리 위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며 “원한이 없다”라고 했고, 아내는 “나도. 죽어도”라고 했다.
▶ 관련기사 ◀
☞ 43년만에 불러보는 "엄마"…납북자 이산가족 극적인 상봉'
☞ [이산상봉]"드디어 만났다"…2차 이산 상봉단 첫 만남
☞ [이산상봉]전신 동맥경화에도 "업혀서라도 가겠다"
☞ 이산가족 2차 상봉단 "기쁨보다 슬픔이 더 크다…만나자마자 이별"
☞ [포토] <이산상봉> "아버지, 몸 건강히 지내세요"
☞ [포토] <이산상봉> "우린 한민족인데"
☞ [포토] <이산상봉> 참을 수 없는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