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덮친 `n번방 사건` 후폭풍…솜방망이 처벌관례 도마 위

靑 국민청원에 재판장 교체·양형 강화 요구 봇물
法 내부통신망에 판사 13명 성명…자성 목소리도
"디지털성범죄에 안이한 인식…심각성 깨닫는 계기로"
  • 등록 2020-03-29 오후 1:54:57

    수정 2020-03-29 오후 1:54:57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불법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 후폭풍이 법원으로도 번지고 있다. 해당 사건 관련 가담자들의 재판이 연기 또는 재개되는 것은 물론 과거 솜방망이 처벌 이력을 근거로 재판장 교체를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특히 법원 내부에서도 아동·청소년 관련 성 범죄와 관련해 그간 지나치게 관대한 양형기준을 적용해 왔다며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지난 25일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4)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 한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법원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다.

논란의 중심에는 서울중앙지법 오모 부장판사가 있다. 오 부장판사는 현재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상 음란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16)군의 재판을 맡고 있다. 이군은 박사방 유료회원이자 운영진으로 활동했던 인물로, 별도로 `태평양 원정대`를 개설해 성 착취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오 부장판사를 재판에서 배제시키는 것은 물론 판사 자격을 박탈시키라는 청원이 3건이나 올라왔고 최대 참여인원이 약 37만명에 이른다. 과거 가수 고(故) 구하라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불법촬영한 혐의를 받은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와 배우 고 장자연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은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 집행유예 또는 무죄 등의 선고를 내린 전력 때문이다.

n번방 전·현 운영자로 알려진 `켈리`, `와치맨`에 대한 구형 또는 선고 역시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청원도 잇따르고 있다. 켈리 신모(32)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고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와치맨 전모(38)씨에게 징역 3년 6월이 구형된 상태다.

법원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 25일 법원 내부 통신망 코트넷에는 판사 13명이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의 전면적 재검토 요청`이란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이들은 최근 1심 판사들을 대상으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및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무감증이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설문조사는 14세 여아를 대상으로 한 성착취 영상 제작의 양형 보기의 범위로 `2년 6개월~9년 이상`을, 영리 목적 판매 및 배포의 경우 `4개월~3년 이상`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물 제작 범죄의 경우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 영리 목적으로 성착취물을 판매한 범죄와 배포한 범죄가 각각 징역 10년 이하와 징역 7년 이하인 점에 비춰 제시된 양형 범위가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최근 텔레그램 등을 통한 범행 행태, 성 착취물이라는 극히 불량한 죄질 등 새로운 형태의 음란물이 등장하는 데 이에 대한 사법부 인식이 많이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사법부나 수사기관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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