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사과` 천정부지 물가에…`못난이` 사는 시민들[르포]

■사과 값 폭등, 청량리청과물시장 돌아보니
고품질 사과 개당 5천원…못난이 찾는다
주부들, 사과 더미 뒤적이며 신중히 골라
자취생은 "돈 주고 안 사먹어"…소비 '뚝'
  • 등록 2024-03-17 오후 2:17:52

    수정 2024-03-17 오후 7:41:39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2시간째 시장 세 바퀴 돌았어요. 그나마 여기가 낫네요.”

17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의 한 상회 앞. 50대 주부 A씨가 오랜 시간 고민한 끝에 못난이 사과 1봉을 담았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한 듯 “애기 사과 하나만 더 넣어달라”고 흥정을 시도했다. 상인은 “우리도 딴 데보다 싸게 파는 것”이라며 단칼에 거절했고 A씨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만원 짜리 한 장을 건넸다.

최근 국산 과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며 장바구니 물가를 상승시키고 있다. 특히 지난해 냉해와 장마 등 이상기후로 생산량이 줄어든 사과는 1년 새 두 배 넘게 가격이 뛰었다. 이날 청량리청과물시장에선 제수용으로 쓰이는 양질의 사과가 개당 5000원~7000원까지 판매되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흠집이 있거나 모양이 좋지 못해 일반 사과보다 20~30% 저렴한 ‘못난이 사과’를 찾는 소비자도 크게 늘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 사과 매대 앞에서 한 주부가 흠이 나고 찌그러진 못난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사진=이유림 기자)
실제 이날 청과물시장 매대에 진열된 사과 대부분이 못난이 사과였다. 7개에 1만원, 다른 곳보다 저렴하게 판매되는 매대 앞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조금이라도 상태가 괜찮은 사과를 고르기 위해 연신 뒤적이는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60대 주부 B씨는 “옛날에 사과가 흔할 땐 이런 애들 다 안 팔고 버려졌는데 요즘은 못생겨도 맛있으면 사 먹는다”며 “대형마트에선 3000원 이하 사과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어 재래시장을 오게 됐다”고 밝혔다. 또 다른 주부 C씨도 “작년 가을에 수확하고 저장했던 사과가 지금 비싸게 팔리는 것이니 당분간은 더 오를 것”이라고 전망하며 “올해 사과는 아직 꽃도 안 폈고 7월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과 가격의 폭등은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자취생과 노인들에게 특히 부담이다.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70대 염모 씨는 “사과가 건강에 좋다 보니 우리 같은 노인들은 하루의 아침을 사과 하나로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며 “요즘은 1일 1사과는 커녕, 사과 한 알을 쪼개 먹어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임산부 아내를 둔 30대 정모 씨는 “사과가 몸에 좋긴 하지만 너무 비싸서 레드향 같은 대체 과일을 주로 산다”고 전했다.

자취를 하는 이들은 아예 과일 먹기를 포기했다. 30대 직장인 윤모 씨는 “자취를 하다 보니 과일은 선물로 들어오거나 부모님이 보내주지 않는 이상 내 돈 주고는 거의 안 사먹는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3 농림축산 주요통계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 전망 2024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연간 과일 소비량은 2007년 67.9㎏으로 정점을 찍고 나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6대 과일(사과·배·복숭아·포도·단감·감귤)의 연간 1인당 소비량은 2014년 41.4㎏을 기록했다가 생산량 감소로 2022년 36.4㎏으로 줄었다.

한편 정부는 이날 농축산물 등 먹거리 물가 안정을 위해 1500억원의 긴급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납품단가 지원규모를 기존 204억원에서 959억원으로 대폭 확대한다. 대상도 현재 사과·감귤 등 13개 품목에서 배·포도·키위·깻잎·상추·양배추 등 8개를 추가해 총 21개 품목으로 늘린다. 품목별 지원단가 역시 사과의 경우 ㎏당 2000원에서 4000원으로 높이는 등 최대 2배 수준으로 상향 조정해 주요 농산물 가격을 낮추기로 했다. 농축산물 할인지원 예산도 23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2배가량 늘리기로 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 매대에 놓인 사과. 개당 5000원, 7000원씩 팔리고 있다.(사진=이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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