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대학에서 경제학과 법학을 복수 전공한 그는 대학 시절부터 학생 대표를 맡는 등 정치적 감각을 키워왔다. 이후 영국 옥스포드대학이 각국 엘리트 학생에게 수여하는 로즈 장학금을 받아 옥스퍼드대 퀸스칼리지에서 정치 및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애벗은 1983년 시드니 맨리에 있는 세인트패트릭신학교에 들어가 사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특이한 말과 행동으로 ‘미친 사제’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신학공부를 중단한 그는 시드니대 재학시절 학보에 기고문을 보냈던 경력을 발판 삼아 호주 전국지 불러틴(Bulletin)과 디 오스트레일리안(The Australian) 기자로 활약했다.
그는 정치권에 첫 발을 들여놓던 때부터 상대 당인 노동당 공격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노동당은 당시 그를 “폭탄 투척범”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아시아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다.
케빈 러드 전 총리가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뒤 베이징(北京)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고 중국인 사위를 맞아들이는 등 아시아권과 남다른 인연이 과시한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