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돋보기] 한명회의 살생부와 찌라시 전성시대

  • 등록 2016-03-05 오후 12:00:00

    수정 2016-03-05 오후 12:00:00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조선 세조는 단종 때 계유정난의 피바람 끝에 왕위에 오릅니다. 계유정난의 설계자였던 한명회는 이후 공신책봉에서 1등 공신에 오를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합니다. 야사에 따르면 한명회는 계유정난 당시 직접 작성한 살생부를 작성합니다. 난의 성공을 위해 꼭 죽여야 할 반대파의 이름을 적은 것입니다. 한명회는 생(生) 또는 살(殺)이라는 신호를 무사들에게 보내 대궐로 들어오는 대신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했습니다. 한명회가 살생부의 원조로 꼽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OOO 의원의 공천은 절대 불가 ▲OO 지역구는 홍길동 의원 유력 ▲ 총선 승리를 위해 OO계파의 대폭 물갈이 등등.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온갖 카더라 통신이 만발합니다. 보통 찌라시(사실 정보지)로 불리는 미확인 정보들이 급속도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누가 만들고 어떤 의도로 유통시키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출처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정확도는 다소 떨어집니다. 그러나 호기심이라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욕망은 찌라시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킵니다. 특히 카카오톡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찌라시의 유통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4.13 총선이 본격화하면서 여야 모두 찌라시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역대 총선 때마다 이른바 ‘살생부’로 불리는 찌라시가 돌았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릅니다. 여야 대립에 따른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공천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찌라시에 대한 정치의 관심은 폭발적입니다. 물리적 시간은 촉박한 데다 여야의 공천과정은 많은 것들이 베일에 가려있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은 현역 의원 40여명의 명단이 적시된 공천살생부는 물론 공천신청자 사전여론조사 유출로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하위 20% 컷오프 발표 직전 다양한 버전의 미확인 컷오프 명단이 돌았습니다. 국민의당 역시 내부갈등이 각종 찌라시의형태로 끝없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공천과 총선을 앞둔 여야 의원들은 벌벌 떨고 있습니다. 찌라시에 본인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화들짝 놀랍니다. 기자들은 정치인들에게, 정치인들은 기자에게 서로서로 사실관계를 체크합니다. 찌라시가 돌 때마다 부정확한 정보라고 웃고 넘길 수만도 없는 노릇입니다. 찌라시의 내용이 그저 허무맹랑하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내용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보통 시간이 지난 뒤 찌라시의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 또한 적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선거 때마다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찌라시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권력자나 여야 실세와의 친소관계 여부에 따라 공천 여부가 좌우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여야의 공천이 확정되면 여의도에서 돌고있는 찌라시의 상당 부분은 사실로 들어날 것입니다. 사상 최악이라는 19대 국회를 이끌어왔던 여야가 20대 국회를 준비하는 방식도 기대이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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