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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대웅 기자] 중국 대형 국유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기업들간에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는 한편 주식시장 활황을 이용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이같은 중국 대표 국유기업들의 행보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아우르며 35년에 걸쳐 수백조원이 투입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에 대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더불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일대일로는 육상과 해상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를 거쳐 유럽까지 하나의 경제권으로 아우르는 교역로를 형성하는 대형 사업이다. 이를 통해 막대한 인프라를 확충해 수요를 창출하고 관련 국가간 무역 확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란 기대다.
기업-정부 손잡고 亞인프라 시장 노린다
중국 양대 고속철도 제조업체인 중궈베이처(中國北車·CNR)와 중궈난처(中國南車·CSR)가 하나로 합치기로 했다. 두 회사가 합병을 결의하자마자 두 달도 채 안돼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합병을 일사천리로 승인해 6개월내에 공룡 기업이 탄생하게 됐다.
역시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국유 원자력발전 업체인 중국핵에너지전력주식회사(CNNPC·中國核電)와 중국핵공업건설집단공사(CNEC)는 이달초 각각 기업공개(IPO)에 나선다. CNNPC가 조달하는 자금은 21억6000만달러(약 2조3100억원)로 지난 2010년 이후 근 5년만에 최대 규모다. 또 CNEC도 27억위안(약 4700억원)을 조달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도 원자력업체 중국광핵집단(CGNPG)이 홍콩에서 IPO를 통해 31억6000만달러를 성공적으로 조달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철도와 원전을 수출 핵심 산업으로 보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달 리커창 총리 주재로 열린 상무회의에서는 철도, 원전 등 중요 설비의 국제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산업 자원을 재통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철도와 원전 수출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 대외 협력 모델을 혁신하고, 공적 자본과 민간자본을 합친 투자운영방식과 같은 새로운 투자운용 모델도 모색하기로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지난 3월 보아오포럼에서 총 1100억달러 규모의 일대일로 구체안을 공개했다. 이에 앞서 관련국들과 철도, 항만 등 경제협력의 뼈대를 상당 부분 세웠다. 지난 2013년 7월 총 길이 1만214km의 허난성 정저우~독일 함부르크 간 국제화물열차의 시범운행을 시작했고 그해 11월 2만㎞의 광동성 둥관~러시아 모스크바 간 국제화물철도를 개통했다. 같은 시기 중국~중앙아시아, 유럽, 러시아로 연결되는 장안호가 개통되기도 했다. 신규노선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진핑 정부는 20~30개국과 고속철 협력을 논의하면서 고속철 실크로드 구상에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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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 세계무역의 중심축으로
중국이 이처럼 일대일로에 속도를 내는 것은 올 하반기 출범 예정인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한 대항마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양국이 글로벌 경제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정면승부를 펼치는 셈이다. 그러나 일대일로는 TPP에 대한 대항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 내부 불균형을 해결하고 대외적으로 중국 위상을 높이기 위한 종합 대책이 될 수 있다. 주변국들의 인프라 투자를 늘리는 과정에서 지난 수년 동안 중국 정부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공급과잉을 해소할 수 있다. 아울러 2000년대 초반부터 오랫동안 추진돼 온 서부대개발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중국은 서부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부 내수시장을 늘리려 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은 무엇보다 중국과 관련국가들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기 때문에 추진에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대일로는 그 거대한 규모에 따라 아시아 시장에서 엄청난 인프라 투자 수요를 일으킬 뿐 아니라 운송 인프라 확충에 따른 교역량 확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맥킨지와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아시아 인프라 투자 수요를 7조~8조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교통 인프라는 2조5000억 달러로 예상하고 있다. 아시아 인프라 투자 증가율은 연 8%가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며 세계 교역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 역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파급 효과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국이 중앙아시아 국가와 교통, 에너지 인프라 건설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과 중앙아시아 간의 협력은 아직 구상단계에 불과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전략과 중국의 신실크로드 전략은 모두 중앙아시아를 지역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 효과적인 정책 수행과 시너지를 위해 양국간 조율과 협력이 요구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