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칼럼]이유 있는 다음 주자, 스트리트 패션

  • 등록 2014-01-28 오전 9:53:57

    수정 2014-01-28 오전 9:53:57

[박병철 칼럼리스트] ‘한 번,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네가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옷을 입고, 마음껏 진흙탕 속을 뒹굴 수만 있다면 왕관이라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구나’.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에서 왕자 ‘에드워드’가 본인과 똑같이 생긴 가난한 아이 ‘톰’에게 하는 말이다.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이브 생 로랑은 당시 길거리(스트리트) 패션에서 영감을 얻어 파리 상류사회의 패션 컬렉션 ‘오트 쿠뛰르’의 여성들에게 바지를 입혀 혁명가로 불리워졌다.

신분을 상징하던 격식있는 ‘포멀(Fomal)’함이 편하고 센스있는 ‘캐주얼(Casual)’로 옮겨갔다. 이 같은 변화는 상당기간 유행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일터의 변화는 더 크다. 일하는 여성들의 ‘유니폼’은 이제 잊혀진 지 오래다. 비즈니스 정장도 아닌 너무 튀지 않는 캐주얼 차림이 출근복으로 바뀌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이다. 근무복 자율제도가 시행된지 한참이고 사무실에서 넥타이 차림을 보기 드물다. 최근엔 넥타이가 더 멋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특별 소품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캐주얼 경향이 지속되는 가운데도 정통적인 제조 기법의 재킷과 구두, 그리고 가방을 선호하는 부류도 있다. 캐주얼한 감각에 클래식한 감성이 부각되는 식이다.

실례로 평상시 항상 재킷을 입고 일하는 후배가 있다. 클래식한 감각이 좋은 후배인데 그는 수트 재킷을 ‘샐러리맨의 갑옷’이라고 칭한다. 카뮤플라쥬(군복) 패턴의 타이와 화려한 양말, 정통 구두를 멋지게 착용하고 있는 후배를 보면 일터에도 새롭게 부각되는 패션 트렌드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들의 선택은 지난 것과 완전히 단절돼 다음의 선택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과도기적인 ‘공존’ 기간이 있다. 클래식한 감각과 새로운 트렌드가 공존한 2013년은 마치 릴레이에서 20m 바톤 전달 구간처럼 분명히 ‘예비’ 구역이었다.

‘즉시(Immediate)’ 패션, 즉 SPA 브랜드의 움직임은 더 빠르다. 다양한 디자인적 요소들이 많이 나타났다. 2012년 겨울, 스터드(뾰족한 금속장식)가 부착된 구두와 잡화가 출현했고 작년 봄에는 스냅백(뒤쪽에 크기 조절 스냅이 붙어 있는 모자)과 군복 패턴이 눈에 띄었다. 올 겨울부터는 숫자, 기모가 있는 스웨트 소재(프렌치 테리)로 만든 다소 짧은 기장의 크롭티셔츠가 유행을 이끌고 있다. 런던 카나비 거리의 모즈 룩과 반전을 주장하던 히피 룩, 존경받기 원했던 힙합 룩까지 과거 ‘거리’로부터 온 많은 유행 요소들이 계속 발견되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로부터 모직 소재의 코트 유행은 끝이났다는 표현을 들은지 고작 1년이 지난 지금, 살짝 아랫단에 여성적인 프릴 장식의 풍성한 사이즈 모직 코트가 인기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유행(트렌드)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향(Top-down)’ 시기가 지나면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Bottom-up)’의 시기가 온다. 세계적으로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글로벌 패션기업 LVMH(루이비통 모에 헤네시)그룹의 선택도 그것을 대비하고 있다. 2011년 LVMH의 대표 브랜드 중의 하나인 ‘겐조’는 아트 디렉터로 뉴욕 소호의 편집매장 ‘오프닝 세레모니’의 공동 대표 ‘캐롤림’과 ‘움베르토 레온’을 영입했다. 그 결과 2013년 겐조는 ‘럭셔리 스트리트’라는 콘셉트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장악하고 많은 매출을 일으켰다. 그간의 침체를 이기고 영향력 높은 브랜드로 다시 리포지셔닝(Re-Positioning)되었다.

이브 생 로랑과 겐조는 어쩌면 같은 관심으로 소비자를 바라본 것이다. ‘복고로의 회귀’는 지나고 ‘새로운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왕자 에드워드가 동경했던 ‘스트리트 패션’이 의류 시장의 다음 주자다. pete.b.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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