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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 지난 12일 이재용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22시간이 넘는 강도높은 마라톤 수사를 벌인데 이어 16일께 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발표하기로 한데 대해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본말이 전도된 현 상황에 대한 심경을 토로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을 뇌물 공여 및 위증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지난해 11월부터 추진되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 문제가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또 지난 2015년 7월 이뤄진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도 훼손될 가능성이 커 삼성이 그동안 추진해온 경영권 승계 작업이 전면 중단될 가능성도 높다.
현재 삼성·현대차·LG·SK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대비책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 특히 삼성·LG 등은 이미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이들 회사의 세탁기에 대해 각각 52.5%와 32.1%의 반덤핑 관세 부과를 통보받은 상태다. 두 회사 모두 지난해 선제적으로 북미 지역에서 판매하는 세탁기의 생산지를 베트남 등 다른 곳으로 돌려 직접적 피해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트럼프 시대 개막에 앞서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로 오는 17일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릴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재계 총수들이 특검의 출국금지로 참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 측근과 만나 인맥을 확보하고 소통의 창구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우리 기업들만 고스란히 날릴 위기에 처했다. 중국은 시진핑 국가 주석이 직접 첫 참가하고 알리바바 마윈 회장과 왕젠린 다롄완다 회장이 동행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마윈 회장은 이미 지난 9일 뉴욕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 미국 내 1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상태다.
재계 한 관계자는 “트럼프 집권이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은 미국 공장 신설 및 증축 등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뤄져야 하는 시기인데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특검의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중요한 결정을 하나도 못 내리고 있다”며 “삼성은 이 부회장이 구속된다면 반도체 시장 호황으로 간신히 수습 국면에 접어든 ‘갤럭시노트7’ 단종사태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미국 공장 건설 등 적기 투자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