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남경필 경기지사가 현란한 대권 드리블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시절 이슈 파이팅에 능수능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연정과 협치, 행정수도 이전, 모병제 도입 공론화 등 우리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화두를 던지면서 이슈 파이팅에 성공했습니다. 보통 특정 대선주자가 던지는 화두는 나머지 주자들에 의해 무시되거나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른바 판을 키워준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논쟁에 끼여 들어봐야 정치적 열매는 애초 논의를 촉발한 주자가 가져가고 뒤늦게 뛰어든 사람에게는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문제는 남경필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요지부동이라는 점입니다. 남경필은 현존하는 여야 차기 주자 중 가장 논쟁적으로 대선이슈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다만 지지율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이슈 파이팅은 백점을 줄 수 있지만 차기 주자로서 국민적 공감대는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차기 주자의 지지율은 아무리 적어도 평균 5% 이상은 유지해야 희미하게나마 대권 가능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밑바닥 지지율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경필에게도 봄날은 올 수 있을까요?
◇‘행정수도 이전·모병제 공론화’ 대한민국 리빌딩의 선결 조건
대선이슈는 사실 여야 모두 대동소이합니다. 진보진영의 몫일 것 같은 경제민주화 이슈를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주도한 게 대표적입니다. 이밖에도 경제활성화, 일자리창출, 복지확대, 주거문제 해결, 사교육비 해소, 남북교류 확대와 안보강화 등등의 분야에서 여야는 모두 큰 틀의 공감대를 이룹니다. 물론 각론에서는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남경필이 최근 대선공약으로 내놓은 행정수도 이전과 모병제 공론화는 성공작입니다. 남경필의 대선 화두는 대한민국 리빌딩입니다. 뗌질식 처방이 아니라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고치자는 것입니다. 지난달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견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의 언급은 남경필의 정치철학과 화두를 잘 보여줍니다.
남경필은 “대선을 앞둔 지금이 ‘대한민국 리빌딩’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면서 △연정과 협치 △공유적 시장경제 △모병제 도입 △수도이전 등 4대 이슈를 핵심으로 거론했습니다. 우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에 여야와 보수·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경기도에서는 연정과 협치를 시작했다”며 “권력을 독식하지 않고 분산하면 상생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지금과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공유와 협력이 경제 발전의 핵심”이라면서 “경기도가 시작한 공유적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경제도 리빌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북핵에 따른 안보위기와 관련, “장기적인 대응책이 필요한 때다. 북한의 비대칭전력은 머릿수가 아닌, 첨단 강군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며 ”안보, 공정, 일자리 세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모병제를 서둘러 도입해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국토를 리빌딩해야 나라 전체가 균형 발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살고 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몰릴 수밖에 없다”며 “정치 기득권과 불통의 상징인 국회와 청와대 모두 내려가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
“국회의원 5번 한 것은 비단길이 맞지만 내부에서 권력을 탐하고 하진 않았다. 선거결과 패배는 한 번도 안했지만 내용을 보면 한 번도 주류를 해본 적이 없다. (정치입문 이후) 야당을 10년 했다. 여당이 된 다음부터는 대통령 형(이상득 의원)이 나오시면 모든 권력이 그리 쏠려서 대통령도 힘들어지시고 잘못되실지 모르니 출마하지 마십시오라고 혼자 포항에 가서 얘기했다가 엄청 고생했다. 지금도 비박이고 늘 비박이라는 꼬리표가 있다. 그게 사실 쉬운 게 아니다. 내부에서 소수의 목소리를 내면서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비단길은 없는 것 같다” (7월 6일 경북대 토크콘서트)
남경필의 롤 모델은 미국의 대공황기를 극복했던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입니다. 본인이 정치 입문 이후 비주류의 길을 걸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태어나서 별 어려움이 없이 자란 금수저다. 제가 많이 받았으니 그만큼 나눠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도 있다. 금수저는 기득권이고 새누리당은 기득권이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기득권을 기득권 안에서 깨면 진짜 바뀔 수 있다. 금수저들 중에 역사를 바꾼 사람이 많은데 기득권 중의 기득권이었던 루즈벨트 대통령은 민주당 대통령하면서 가진 자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했고 중산층이 가장 확대된 시대였다.”(7월 6일 대구 경북대 특강)
남경필은 새누리당 내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몸은 새누리당에 있지만 마음은 야당을 향해 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입니다. 17대 국회 시절에는 강경 보수 성향의 선배 의원들로부터 공개적으로 탈당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으로 비주류 정치행보는 남경필의 장점입니다. 그가 새누리당의 대선주자가 된다는 것은 새누리당의 혁명적 변화와 동의어입니다. 외교안보는 물론 경제문제의 결정적 고비 때마다 우클릭 행보로 일관했던 새누리당의 변화를 현실적으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완의 대기’ 남경필, 차차기 이미지 벗고 지지율 올려야
|
남경필이 노무현와 같은 기적적인 대권드라마를 연출하려면 이슈파이팅을 지지율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 없이 대권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의 지지율은 매우 미약합니다. 리얼미터가 최근 실시한 9월 정례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남경필은 고작 4.0%로 5위에 그쳤습니다. 여야 차기 주자 모두를 대상으로 한 9월 4주자 주중집계에 따르면 1.0%로 13위에 머물렀습니다. 여야 차기주자 중 가장 활발한 대권행보를 해왔다는 점에서 본다면 매우 아쉬운 성적표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큰 문제는 남경필의 정체성입니다. 차기 주자보다는 여전히 차차기 이미지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소속이지만 전통적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점도 약점입니다. 또 행정수도 이전이나 모병제 이슈 자체도 사실 찬성보다는 반대여론이 더 높습니다. 새누리당의 정체성과도 거리가 있는 이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더구나 노이즈 마케팅은 대체로 인지도가 낮은 정치인들에게 통한다는 점에서 경기지사로 잘 알려진 남경필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사실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의 압승을 거뒀다면 현역 광역단체장인 남경필에 대한 조기등판 요구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남경필은 사실상의 대권행보와 달리 출마 여부에는 말을 아껴왔습니다. “내년 초에 국민들의 판단과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한 게 다입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은 강력한 대세론을 누리던 이인제를 꺾었습니다. 현역 의원 중 유일하게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이 천정배라는 사실은 노무현이 얼마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남경필이 차기 지지율 1위로 대세론을 누리는 반기문을 꺾고 새누리당 주자가 될 수 있을까요? 과연 남경필은 제2의 노무현이 될 수 있을까요?
▶ 관련기사 ◀
☞ [대선 맛보기] ‘정치고수’ 반기문, 추석밥상 중심에 오르다
☞ [대선 맛보기] ‘반전의 기회 있을까’ 서울시장 박원순의 차기 도전
☞ [대선 맛보기] 반기문 대선 필패론과 도올 김용옥의 천기누설?
☞ [대선 맛보기] 김대중의 4자필승론 ‘악몽’ 되풀이하는 야당의 '오만과 편견'
☞ [대선 맛보기] 추미애 압승과 ‘문재인의 1469만표’
☞ [대선 맛보기] ‘노무현의 왼쪽’ 안희정, 문재인 뛰어넘을까?
☞ [대선 맛보기] ‘30시간 법칙’ 무너뜨린 김무성의 홀로서기 실패
☞ [대선 맛보기] 이정현의 나비효과와 반기문의 꽃놀이패
☞ [대선 맛보기] ‘문재인 대세론은 필패’ 기우인가 vs 필연인가
☞ [대선 맛보기] 5년 빨리 대통령하려다 10년 뒤에도 못한다
☞ [대선 맛보기] 英 브렉시트 후폭풍과 한국의 ‘묻지마 지역투표’
☞ [대선 맛보기] 진보정당 없는 차기 대선, 과연 바림직한가요?
☞ [대선 맛보기] 아무리 떠들어도 개헌은 불가능하다
☞ [대선 맛보기] ‘저녁이 있는 삶’ 손학규, 좌고우면 vs 와신상담
☞ [대선 맛보기] ‘거짓말쟁이?’ 문재인 vs ‘사쿠라?’ 안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