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염지현 기자]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화장품 기업들이 한국 기업과 기술교류, 투자 등의 형식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의 화장품 제조 기술을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 받았다는 측면에선 반가운 일이지만 협상 내용 등이 모두 비공개에 부쳐지며 과연 얼마나 실익이 있는 거래인지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윌리엄 로더(William P. Lauder, 오른쪽)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 회장과 이진욱 해브앤비 대표가 투자 계약서에 서명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에스티로더 컴퍼니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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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 컴퍼니즈는 국내 화장품 기업인 ‘닥터자르트’의 지분을 인수한다는 내용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에스티로더 컴퍼니즈는 ‘에스티로더’를 비롯해 ‘크리니크’, ‘랩시리즈’ ‘오리진스’ ‘맥’ ‘바비브라운’ ‘라 메르’ 등 해외 유명 브랜드를 30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세계 4위(연매출 기준) 화장품 회사다. 그런 글로벌 기업이 규모가 작은 한국 화장품 회사에 손을 내밀었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거래는 업계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몇 퍼센트나 되는 지분을 인수하는지, 닥터자르트가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제공하는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에스티로더 측은 “세계 소비자들이 ‘K-뷰티’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 화장품 시장은 아시아 뷰티 유행을 선도할만큼 크게 성장해 이번 투자를 진행하게 됐다”고만 언급했다.
이에 앞서
아모레퍼시픽(090430)도 LVMH(루이 비통 모에 헤네시)그룹 산하 명품 화장품 ‘크리스챤디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LVMH 역시 지난해 화장품 부문 매출만 51억달러(약 5조8200억원)를 기록할 만큼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거대 명품 화장품 기업이다. 아모레퍼시픽이 국내 1위 화장품 기업이고 아시아에선 유명해도 선진 시장으로 불리는 유럽, 남미 등에선 인지도가 낮다는 측면을 떠올리면 이 역시도 이례적이다.
크리스챤디올은 아모레퍼시픽이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 ‘아이오페’를 통해 지난 2008년 출시한 쿠션 화장품이 새로운 카테고리를 창출할 정도로 인기를 끌자 ‘전략적 제휴’를 맺고 기술을 전수받기로 했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 역시 기술 전수의 댓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우리(아모레)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번 협력을 평가하고 있다”며 “디올이 먼저 쿠션에 관심을 두고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우리 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글로벌 기업과의 협력이 기술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상징성 이외에 큰 실익은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친다. 에스티로더나 크리스챤디올은 국내 기업과의 협업으로 중국, 아시아 시장 진출에 힘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이익은 어느 하나도 구체화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덩치가 작은 국내 기업은 글로벌 기업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어렵다”며 “주고 받는 게 분명하다면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파트너십이란 이름 아래 국내 대표 제품에 글로벌 브랜드 로고가 박혀 출시되거나 투자를 조금 받고 기술만 유출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