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08개 사찰을 돌아보며 '108 사찰 생태기행'을 책으로 엮어 내고 있는 사찰생태연구소 김재일 대표에게 이 계절 걷기 좋은 사찰의 숲을 물어 소개합니다. '11월 초까지 가을 맛이 나고 관광객이 지나치게 몰려 북적대지 않으며 경사가 낮아 가족이 걷기 좋은 길'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산사의 숲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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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가 이렇게 많아서 절 이름이 다솔사구나."
경남 사천 다솔사(多率寺)를 찾은 이들은 종종 사찰 옆에 도열해 있는 굵고 가는 소나무를 보고 절 이름이 소나무에서 비롯됐다고 확신한다. 소나무를 뜻하는 한자는 '솔'이 아니라 '송'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아차, 그럴 리가 없지' 하고 무릎을 친다. 머리로 지식을 가늠하기 전, 청량한 소나무 기운은 마음에 이미 깃든다. 다솔사에는 여느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는 일주문(一柱門)과 천왕문(天王門)이 없다. 우락부락한 사천왕(四天王)보다 한층 정겨워 보이는 소나무들이 절 진입로에서 가지를 뻗으며 일주문·천왕문을 자처한다.
다솔사는 봉명산 군립공원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절을 출발점으로 삼아 산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는 흙길은 선명하고 푹신하며 이정표가 친절하다. '봉명'(鳳鳴)은 봉황이 노래함, '다솔'(多率)은 좋은 인재를 많이 거느림을 의미한다. 모두 '좋은 기운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그 좋은 기운 때문일까. 만해 한용운이 이끌던 불교 독립운동 단체 '만당'은 이 절을 근거지로 삼았고 소설가 김동리는 이곳에서 '등신불'을 썼다. 화려한 과거와 달리 절은 규모가 작은 편. 적멸보궁, 대양루, 웅진전, 극락전 등 10여 동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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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에서 보안암으로 이어지는 약 2㎞ 숲길은 적멸보궁 뒤 넓은 차 밭에서 시작된다. 진초록을 여태 끌어안고 있는 차 밭 사이사이 잘 생긴 감나무 십여 그루가 주황 열매를 매달고 계절의 멋을 제대로 뽐낸다. 차 밭 사이에 난 작은 길을 돌듯이 걸어 '등산로' 이정표를 따라 산 숲으로 들어섰다. 갈림길마다 '보안암' 이정표를 따르면 약 1시간 후에 산 동쪽 기슭 보안암(普安庵)에 닿게 된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도 숲은 이내 깊어진다. 굴참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생강나무… 활엽수들은 단풍으로 차려입고 잎을 우수수 떨어뜨린다. 찬란한 계절이 끝났다는 걸 작은 곤충들도 본능으로 느끼는 걸까. 가을 나무 사이사이에서 매미가 목 놓아 울고 잠자리는 날개를 집요하게 떤다.
가벼운 오르막을 10분 정도 걸으면 길은 다시 평탄해진다. 벤치들이 놓인 첫 번째 휴게 공간을 지나고 나니 어느새 좌우는 다시 빼곡한 솔숲이다. 송림(松林)이 뿜는 산소의 비단같이 맑은 질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두 번째 휴게 공간을 지나고 나자 바람이 좀 더 거칠어진다. 숲에 가려 보이진 않아도 바다가 지척이라는 걸 느낄 수 있는, 파도소리를 닮은 통쾌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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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암에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간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나무 향기의 농도가 더해간다. 하늘을 향해 솟구친 소나무들은 키가 크다. 나무 끝을 바라보려면 목 뒤가 뻐근할 정도다. 빙하기 때 풍화작용으로 붕괴해 생겼다는 암자 직전 너덜 지대를 지날 때는 산아래 노란 논 너머 호수 같은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 둘, 셋, 넷… 자연의 돌을 깎지 않고 층층이 쌓아 만든 돌 계단을 올라 보안암 담장에 닿았다. 생긴 대로 돌을 끼워 맞춰 쌓은 자연스런 돌담에선 진초록 이끼가 '나도 식물이에요'라고 속삭이는 듯 수줍은 갈색으로 촉촉하게 물들었다.
여행정보_ 봉명산 군립공원엔 다솔사-보안암 외에도 등산로가 여럿 나 있다. 다솔사에서 해발 408m인 정상까지는 편도 1㎞ 정도로 40분쯤 걸린다. 보안암까지 가는 길은 흙길이라 걷기 좋지만, 정상 부근엔 가파른 돌 길이 이어져 등산화를 갖춰 신어야 한다.
자가용: 남해고속도로 곤양나들목→'곤양' 방면 우회전→12㎞쯤 간 후 '다솔사' 이정표. 대중교통: 사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75번 시내버스(오전 6시55분~오후 8시40분 8회 출발)를 타고 곤양버스터미널까지 간다(약 25분 정도 소요). 곤양터미널에서 다솔사까지는 약 8㎞, 택시로 5~10분 정도.
문의_ 다솔사 경남 사천시 곤명면 용산리 86 (055)853-0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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