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의 오후 6시는 신데렐라의 밤 12시 같다. 마지막 배가 오후 9시 넘어서까지 있으니 좀 더 섬을 즐기다 갈 법한데도 사람들은 해가 지자마자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중앙 잣나무길을 지나 휙휙 섬을 빠져나간다. 급한 듯 배에 오르는 이들에게 "왜 벌써 가세요"라고 물었다. "사진 찍으러 왔는데 어두우면 힘들어요. 뭐, 근사한 야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춘천 가서 닭갈비 먹어야죠." "자전거 반납하라고 해서요." '먹을거리도 놀거리도 없잖아요'라는 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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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쯤 되니 섬은 텅 빈 듯 고요해졌다. '우리만의 남이섬'이 은밀한 모습을 드러낸다. 남이섬에서 운영하는 호텔 '정관루'에 숙박을 예약해두었다면, 마음은 더욱 느긋해진다. 자전거가 오고 가던 중앙 잣나무 길과 유명세를 떨치는 메타세쿼이아길엔 주황빛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온다. 낮 동안 웃음소리가 흘러넘치던 길을 자박자박 혼자 걷는다는 '독점의 기쁨'에 뿌듯해졌다. 저 멀리 길 끝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어머, 저기 사람 있나 봐"라는 목소리에, 소중한 애인을 빼앗긴 듯 질투심이 일 정도다. 고개를 들었더니 남이섬 강우현 대표의 말마따나 "별이 무리 지어 따라오는" 것 같다.
"제가 남이섬에 반한 게 바로 이 밤 풍경 때문이었어요. 2000년 말 이 섬에 처음 왔는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별이 쏟아지는 거예요. 물소리, 바람 소리, 숨소리밖에 안 나는데 내 숨소리가 제일 크더라고요. 그 후 남이섬을 가꾸어가면서도 '밤만은 그대로 두자'고 결심했습니다."
텔레비전 없는 호텔 방에서 사랑 시(詩)로 가득한 방명록을 뒤적이다 일찍 잠을 청했다. 강 대표가 방명록 표지에 써놓은, '남이섬은 달밤이 좋다. 별밤은 더 좋다. 하지만 새벽을 걷어 올리는 물안개를 마주하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는 짧은 시를 보고 또 다른 '마법의 시간'인 새벽을 누려보고 싶은 욕심이 일어서였다. '꼬끼오오오' '까악까악까악'…. 새들의 울음이 새벽을 깨웠다. 섬은 지난 밤부터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모습 그대로 조용하고 촉촉했다. 밤새 이슬이 차오른 숲 길을 뽀얀 안개가 부드럽게 안고 있었다.
공룡 한 마리 느릿느릿 걸어가면 어울릴 듯한 '원시 남이섬 감상'을 마친 후 오전 9시쯤 초록 물을 배로 건너 섬을 떠났다. 건너편 선착장에서 '남이섬의 낮을 즐기려는 일본 아주머니 10여 명과 대학생 커플들이 달뜬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까르르 웃으며 배에 깡충깡충 올라탔다. 물 위로 햇살이 쏟아지는 '낮의 세계'…밤을 함께 보낸 예쁜 하현달이 파란 하늘에서 서서히 옅어져 갔다.
강원도 춘천 남이섬의 유일한 호텔은 '주식회사 남이섬'에서 운영하는 '나미나라 호텔 정관루(靜觀樓)'다. 2~12인실까지 객실 종류는 다양한데 객실마다 주제를 잡아 개성 있게 꾸몄다. '이선효실(室)' '이서지실' '이지민실' 등 작가 이름이 붙은 '갤러리 방'(더블룸 주중 6만6000원·주말 9만9000원)은 미술 작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살려 독창적으로 장식해 특히 인기다. (031)580-8000·www. namihotel.com
남이섬 안 대부분 식당은 해가 지면 문을 닫는다. 단 호텔 투숙객을 위해 매일 식당 한 개가 '당번'을 선다. '당번식당'은 오후 9시까지 열며 안내 센터에서 '그주의 당번'이 어디인지 가르쳐준다. 섬향기(031-581-2189)에선, 닭 살코기만을 숯불에 구워먹는 '남이섬 닭갈비'를 2인분 2만4000원(밥 포함)에 판다. 약 오후 9시30분까지 여는 섬 안에 있는 수퍼마켓 소나타마트(031-580-8010)에서도 와인 맥주 및 각종 간식거리를 판다.
자가용으로: 서울 강변북로 토평 나들목→서울외곽순환 100번 고속국도 의정부 방면→퇴계원나들목 춘천 방면→진관 나들목(춘천 방면)→46번 국도 청평·가평·춘천 방면→대성리→청평→가평오거리에서 오른쪽 'SK경춘주유소' 끼고 우회전→75번 국도→800m쯤 가다 왼쪽 현충탑 끼고 좌회전→남이섬 선착장
1~3월 6000원(섬 이용료·배 왕복 승선료 포함)·4~12월 8000원.
남이섬 대표번호 (031)580-8114· www.namis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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