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처음 혈당측정기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세상 물정 모르는 교수들이 무슨 수로 살아 남겠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술력이라면 충분히 해 볼만 하다고 확신했고 성공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자신합니다.”
| (제공=아이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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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슈, 존슨앤드존슨, 애보트, 바이엘 등 세계적인 제약사들은 세계 자가혈당측정기 시장의 98%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각각의 대부분 나라에서도 90% 이상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얘기가 다르다. 업계에서는 1위 로슈(약 28%)를 아이센스(약 25%)가 근소한 차로 추격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이센스는 2000년 설립 후 매년 평균 20%씩 성장해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매출 1300억원이 목표다. 아이센스 공동창업자이자 기술부문을 맡고 있는 남학현(57·사진) 사장은 “꼭 필요한 원칙 몇 가지만 지켰더니 성공이 따라왔다”고 말했다.
◇원천 기술 살 회사 못 찾아 교수들끼리 ‘창업’
1992년부터 광운대 화학과에서 같이 근무하던 남학현·차근식 교수는 1999년 ‘전해질 분석기(혈액 속 나트륨, 염소, 칼륨, 칼슘 등 전해질의 양을 자동으로 분석하는 장비) 개발’을 주제로 정부 연구과제에 응모했다. 1년에 걸쳐 기술은 개발했지만,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기업체에 기술이전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이 기술을 사겠다는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두 교수는 연구를 계속할 방법을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고 ‘직접 사업화하는 것은 어떠냐’는 답을 들었다. 2000년 아이센스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두 교수는 ‘기술지주회사’를 꿈궜다. 원천 기술을 개발해 다른 기업에 넘기고 받은 수익금으로 연구에 매진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은 혈당측정기를 사업분야로 삼았다. 당시 자가혈당측정기 세계 시장 규모는 약 7조원 정도였다. 남 사장은 “0.1%의 시장점유율만 차지해도 70억원이다. 이 정도면 직원인 대학원생들 월급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며 “적어도 메이저 업체들보다 성능 좋게 만들 자신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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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2002년 제품을 개발했다. ‘줄줄’ 흐를 정도인 4㎕의 피와 30초 정도의 측정시간이 필요했던 외국 제품에 비해 ‘바늘 끝에 맺히는 정도’인 0.5㎕로 5초만에 검사가 끝날 만큼 기술력이 우수했다. 하지만 기술을 사겠다는 회사는 없었다. 남 사장은 “접촉했던 기업들이 모두 ‘기술을 무료로 넘길 의향은 없는지’ ‘나중에 잘 팔리면 그 때 비용을 지불하면 안 되는지’ 같은 말만 했다”고 말했다. 결국 직접 생산해야 했다. 2003년 학교 근처에 소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고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운도 따라줬다. 첫 제품이 시장에 선보인 2004년에 글로벌 업체들이 대리점 유통을 접고 직영체제를 갖췄다. 그동안 이들의 물건을 팔던 대리점이 더 이상 팔 물건이 없어지게 되자 아이센스의 제품을 받아갔다. 남 사장은 “당시 제품은 지금 보면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제품이었다”며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을 해결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첫해에 매출 18억원을 올렸다.
같은 해 미국 혈당측정기 업체인 아가매트릭스 관계자들이 아이센스를 찾았다. 이들은 기존의 특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검사지(스트립)를 찾고 있었다. 남 사장은 “처음부터 글로벌 업체들의 특허를 모두 분석한 뒤 연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아가매트릭스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05년 36억원이던 매출은 1년새 128억원으로 급증했다.
| 측정한 혈당 수치는 바로 핸드폰에 저장돼 변화 추이를 관리할 수 있다.(사진=아이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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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정부가 유일하게 인정한 혈당측정기
2010년 9월 뉴질랜드에 진도 7.1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뇨병 환자에게 무료로 혈당측정기를 제공하는 뉴질랜드는 재건을 위해 복지 예산을 줄여야 했다. 딱 한 제품만 정하는 뉴질랜드 정부의 국제입찰에서 아이센스는 서류와 견본품 심사뿐만 아니라 원활하게 공급할 생산능력을 갖췄는지, 특허소송에 휘말릴 우려는 없는지 등의 꼼꼼한 조사를 거쳐 글로벌 업체들을 제치고 유일하게 혈당측정기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이센스 본사 전경(사진=아이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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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개의 특허를 보유한 아이센스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의 제품을 왜 강제로 쓰게 만드냐’는 시위가 뉴질랜드 국회는 물론 한국대사관 앞에서도 계속 열렸지만 뉴질랜드 정부는 타협하지 않았다. 남 사장은 “뉴질랜드 수출은 80억~90억원 규모로 큰 편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 진출할 때 큰 힘이 된다”며 “정책 실시 3년 후 나온 뉴질랜드 보고서에서 ‘정책을 유지하는데 아무런 문제 없음’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아이센스는 매출의 85%를 수출로 올리는데 세계 80여개국에 진출해 있다. IT(정보기술)를 접목해 측정한 혈당수치는 스마트폰에 바로 저장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환자들이 일일이 수첩에 적지 않아도 혈당수치 변화를 쉽게 알 수 있게 됐다.
사업다각화를 위해 아이센스는 현재 혈액가스, 당화혈색소, B형간염, 에이즈, 갑상선기능, 암 유전자 등 면역과 관련된 생체 신호를 분석하는 장비를 비롯해 피하지방에 붙이는 패치형 연속혈당측정기도 개발 중이다. 남 사장은 “착용이나 부착이 가능한 새로운 장치들을 개발해 글로벌 업체들과 제대로 경쟁하는 회사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이센스 실적추이. (단위: 억원, 자료=아이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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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현 아이센스 사장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 주립대(Michigan State Univ.)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광운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같은 과 동료 였던 차근식 교수와 2000년 아이센스를 설립했다. 회사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더 이상 후학양성에 전념할 수 없어 2015년 광운대를 퇴직하고 현재 광운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2008년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보건의료과학기술 연구개발 우수연구자 표창을, 2011년 산업기술진흥유공자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 아이센스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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