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회계정보…“분식회계 위험 인지했지만 지원할수밖에 없었다”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위험성은 작년 10월22일 서별관회의가 열리던 당시에도 인지했다.” (8일 조선·해양 구조조정 연석청문회 유일호 경제부총리) 구조조정 청문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대우조선해양(042660) 사례는 우리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의 현실을 돌아보는 리트머스시험지다. 국회는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 혐의를 알고 있었음에도 수 조원대 혈세를 지원한 배경을 집중 추궁했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분식회계의 위험성 정도는 인지했지만 당시로선 이를 분식으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는 재무제표가 거짓으로 작성됐을 위험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공적자금이 지원된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결정은 우리나라 분식회계 적발 시스템과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이 그 자체로 부실했고 둘 사이에서의 연계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융감독원이 분식회계를 적발하기 위해 회계감리에 착수하면 대기업은 보통 1년 안팎의 기간이 소요된다. 분식회계로 의심할만한 상당한 증거가 있더라도 이를 검증하는 데는 1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긴급하게 필요한 유동성은 분식회계 위험이 인지되는 상황에서도 공적자금 지원이 이뤄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기업이 재무제표를 속이는 상황에서도 국민의 혈세가 지원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회계법인의 부정확한 감사의견,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뒷북 하향’ 평가 논란, 매수 일색의 증권사 투자보고서 등 자본시장 워치독 기능이 고장 났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기업의 회계정보가 불투명하게 생산되는 일은 회계정보를 가공해 기업을 분석하는 기관투자자와 신용평가사 등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기관투자자나 신용평가사, 회계법인 모두 기업을 상대로 영업해야 하는 을(乙)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핵심 자료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데다 스스로 저가 일감 수주에 나서 감사와 신용평가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일을 자초하고 있다. 한 신용평가사 연구원은 “기업에 적시에 신용평가에 필요한 자료를 받을 수도 없고 신평사에 알리지도 않고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기도 해 늘 뒷북 평가라는 비판에 직면한다”고 말했다.
증권사 크레딧 애널리스트도 “회사채 신용등급 A급 기업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핵심 정보인 독자신용등급은 수년째 논의를 하면서도 공개가 되지 않고 있다”며 “이는 우량 회사채로만 수요가 쏠리는 시장 양극화 현상으로 연결되고 결국 자원 배분의 효율성 저하에 따른 시장 자율의 구조조정 기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기업 경영정보 공시와 회계 제도를 일종의 기업 규제로 인식하고 기업 부담을 완화해주는 쪽으로 세워놓고 있었지만 대우조선 분식회계 논란 이후에는 기업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키를 틀고 있는 모습이 감지된다. 신용평가사들의 자본시장 워치독 역할을 강화하는 신용평가산업 발전 방안이 개선안발표를 눈앞에 두고 있고 연말 발표를 목표로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올 연말 발표할 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을 준비하면서 기업에 분식회계 책임을 명확히 지울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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