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끝에서 만나는 하늘 끝|해남 도솔암(兜率庵)
극 초반, 좌의정 이경식(김응수)은 추노꾼 이대길(장혁)에게 거액의 추노(推奴·노비 추적)를 제안한다. 그 대상이 조선 최고의 무장(武將)이었으나 노비가 된 뒤 탈출한 송태하(오지호)다. 쫓고 쫓김의 첫 번째 여정에서, 대길 일행이 암자로 태하를 추격해가는 장면을 찍은 곳이 바로 전남 해남 달마산 도솔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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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은 해남군에서도 남쪽으로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이다. 얕은 구릉들로 포근한 해남에서 마주치는 이 암릉의 흐름은 난데없되 그만큼 신비롭다.
지난 12일 찾은 해남은 봄을 예비하는 비로 촉촉했으나, 해발 400여m 고지의 도솔암을 향한 길은 진눈깨비로 서늘했다. 흩날리는 눈으로 제한된 시야 속에 언뜻언뜻 기암 괴벽이 모습을 드러냈다. 능선을 따라 30분쯤 걷자 저 멀리 구름 위에 뜬 것 같은 도솔암이 보였다. 그곳에서 바람은 파도를 닮았다. 바람은 철썩이는 소리를 내며 흐른다. 바람의 바다 안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송태하처럼 진눈깨비 너머 우뚝 선 바위가 아련하다.
◆ 바위를 닮다|구례 사성암(四聖庵)
대길 일행의 추격 장면을 찍은 곳은 전남 해남 달마산이지만 정작 그 암자는 해남에서 차로 네 시간 가까이 떨어진 전남 구례에 있다. 바로 사성암이다. 극 중 '여운암'으로 나오는 이 암자는 백제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된 세월로 암자는 바위를 닮았다. 약사전은 바위를 뚫은 또 다른 바위 같고 대웅전은 바위 위에 살포시 앉아 단아하다.
암자 내 가로등과 연등을 본다면 추노 제작진이 컴퓨터 그래픽(CG)을 쓴 건 아닐까 의문이 들지만, 대답은 '아니요'다. 암자 측 허락을 받아 아예 모두 떼고 촬영했다.
대길이 태하를 쫓으라는 좌의정의 제안을 받기 전, 대길과 태하의 첫 대결이 펼쳐지는 장면이 있다. 태하가 훈련원 마방 관노들과 함께 도망칠 때다. 태하와 대길은 서걱대는 갈대밭에서 서로 목숨을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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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해남 고천암호 갈대밭으로 이미 여러 영화의 '러브콜'을 받았던 곳이다. 영화 '서편제'와 '살인의 추억'을 여기서 찍었다. 본래 고천암호는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12월부터 2월까지 가창오리떼가 몰려든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95~98%의 가창오리가 겨울을 나는 곳으로 알려졌으니, 이곳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가창오리라고 봐야 한다. 갈대밭은 고천암호 둘레로 14㎞ 정도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 비밀의 계곡|포천 비둘기낭
쫓고 쫓김의 여정에서, 대길은 태하를 여러 번 따라잡는다. 태하를 따라잡은 대길이 던진 칼에 김혜원(이다해)이 맞는 장면도 그중 하나다. 태하는 상처를 입은 혜원을 부축하며 한 동굴에 잠시 기거한다. 이 동굴이 경기 포천 비둘기낭.
◆ 절벽·바다의 만남|파도리 해수욕장
청나라 장수 용골대(윤동환)가 병자호란 이후 소현세자(강성민)를 데리고 청으로 돌아가는 길, 태하 일행이 이들을 덮친다. 말발굽 아래 자욱한 모래 연기 속에서 바다의 흔적을 찾긴 어렵다. 그러나 이 장면을 촬영한 곳은 바다다. 충남 태안 파도리 해수욕장에서 CG를 이용해 촬영한 것.
파도리 해수욕장은 풍화 작용으로 인한 절벽이 길게 늘어선 것이 특징이다. 윤 디렉터는 "처음 이 장소를 골랐을 땐 독특한 느낌의 바닷가 촬영 정도를 생각했으나 곽정환 PD가 협곡 액션 장면을 제안했다"고 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만큼 3일간 밀물 때와 썰물 때를 확인해가며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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