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경남 통영시 욕지면 사량도(상도·上島) 지리산(해발 398m)은 변덕스러웠다. 맨손으로 짚으면 쓰라린 뾰족한 돌길과 야생화 가득한 포근한 흙길이 산길을 번갈아 이어갔다. 바위를 잡고 기다시피 걷다 주저앉고 싶을 때쯤 산 내음과 새소리가 오감(五感)을 어루만져주는 흙길이 펼쳐지는 두 얼굴의 산."남도의 지리산과 같은 이름을 가질 만한 자격이 있는 멋진 산"이라는 산꾼들의 설명이 무색하지 않아 보였다.
여러 길 중에 가장 수월한 경로를 택해 걷기로 했다. 섬 남서쪽 돈지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능선 타고 지리산 정상에 오른 후 성자암 거쳐 옥동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배 타기 위해 금평항까지 돌아가는 시간을 포함해 네 시간 정도 걸린다.
돈지마을에서 널찍한 임도를 따라 쭉 올라가며 산행을 시작했다. 왼쪽에 펼쳐지는 바다 풍경에 불평할 겨를이 없다. 30분쯤 올라가 만난 벼랑 끝 전망대는 발아래서 뻗어 나온 바다가 수평선까지 이어진 듯 통쾌한 풍경을 선물했다. 바다 사이사이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닮은 죽도(竹島)가 솟아오른 모습이 보였다.
좁은 흙길을 다시 30분쯤 오른 후 바위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층층 바위는 날카롭고 울퉁불퉁하고 변덕스러웠다. "아이고, 날카로워라. 고기 썰어도 되겠네." 아주머니들의 한숨 섞인 투정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하도 밟고 다녀서 그런지 까마득한 바위 사이사이 한 걸음 한 걸음 발 디딜 평평한 틈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다. 바위를 손으로 잡고, 게처럼 옆으로 걸어서, 바위에 엎드리다시피 붙어서…. 한 걸음당 해발 약 10㎝씩 고도를 높여가는 사이 바다는 청회색에서 청록색으로, 파랑에서 새파랑으로 점점 선명한 빛깔을 띠어갔다. 정상서 내려다본 이웃 섬들은 은테를 두른 초록 언덕처럼, 반짝이는 파도 속에서 도도했다. '지리망산'(知里望山)이라는 이 산의 또 다른 이름을 뒷받침하듯 바다 건너 멀리, 온화한 '육지 지리산'의 몸매도 흐릿하게 보였다.
| ▲ 산의 물결 속에 바다 섬이 떠 있는 듯, 빙 둘러선 산세가 바다를 안았다. 바위와 흙길이 번갈아 손을 내미는 경남 통영 사량도 지리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항구에서 만난 찰싹대는 파도와 달리 의젓하고 진득해 보였다. / 조선영상미디어 |
|
정상에서 성자암 지나 옥동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처음 10분 정도 바위 길을 빼고는 언제 날카롭고 거칠었냐는 듯 부드럽고 푹신한, 흙으로 된 잘 다져진 내리막이 주를 이뤘다. 그나마 성자암부터 산길 끝 옥동마을까지는 널찍한 포장도로가 이어져 심심하단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내려갈수록 바다는 다시 청회색으로 납작해지는 대신 섬을 휘둘러 삐쭉삐쭉 뻗어 있는 지리산의 날카로운 산세가 몸매를 드러냈다. 대파밭을 손질하는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와 그 옆에서 '메에에'하고 풀 뜯는 흑염소들… '사람 사는 풍경'이 산과 바다를 이었다.
통영 가오치 여객터미널에서 매일 오전 7시·9시·11시, 오후 1시·3시·5시10분 사량도 금평항으로 가는 배가 출발한다. 주말엔 배 편수를 늘릴 때가 잦다. 문의 사량수협 (055)647-6016
금평항서 사량도 마을버스를 타고 '돈지'에서 내려 우리횟집 옆에 비스듬히 난 오르막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전망대 직전 오른편 초록 철망 사이에 뚫린, 등산로 진입구로 들어가 흙길을 걷는다. 지리산 정상까지 간 다음→평바위→성자암→옥동마을로 내려가 항구까지 걸어간다. 고수(高手)들은 돈지~지리산~성자암~월암봉~연지봉·가마봉~옥녀봉~금평터미널로 가는 코스를 선호하는데 초보에겐 무리.
▶ 관련기사 ◀☞이 섬에 발 디디면 그대로 드라마가 된다☞거기, 600년 한양이 있었네☞고궁박물관, 줄타기공연 · 궁중음식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