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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관계는 정치의 숨은 본질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든 이슈에 대해서 사생결단이다. 여야가 사이좋게 합의할 수 있는 이슈는 ‘세비 인상’을 제외하고는 없다. 모든 것에 대해 유불리를 따진다. 이 과정에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식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일상화됐다. 여당일 때는 늘 다수결 원리를 강조하며 밀어붙인다. 야당이 되면 180도 돌변한다. 다수당의 횡포를 비판하면서 육탄방어도 불사한다. 사회 모든 분야가 발전하는데 정치만 제자리를 맴돈다. 정치혐오를 유발하면서 하향평준화라는 악순환의 길로 접어든다.
내년 4월이면 21대 총선이 열린다. 선거는 정치의 본질이 권력투쟁이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단순한 의회권력의 재편이 아니다. 오는 2022년 3월에 치러질 차기 대선의 ‘바로미터’다. 총선 성적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차기 대권의 향배를 점쳐볼 수 있다. 헌법에는 행정·입법·사법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삼권분립의 원칙이 명시돼있다. 그래도 핵심은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권력이다. 여야가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총선 성적표에 따라 민주당은 재집권의 희망을, 한국당은 정권탈환의 기반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선거는 쉽게 비유하면 축구와 비슷하다. 상대방이 계속 자책골을 넣는다면 내가 단 한 골도 넣지 않고도 3대 0 승리도 가능하다. 87년 대선의 경우 양김(김영삼·김대중) 분열이라는 자책골로 무너진 경우다. 참여정부 시절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 압승을 거뒀다. 이유는 간단했다. 야당의 무리한 탄핵 추진에 따른 역풍 때문이었다. 2년 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 이유도 간단했다. 참여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총체적 심판이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메가톤급 압승을 거둔 이유도 비슷했다.
물론 여야 모두 상대방의 자책골에 기대지 않고 개인기와 돌파로 골을 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다. 여권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의 진전과 온갖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경제문제에서 반드시 가시적인 성과를 얻어야 한다. 특히 집권 이후 온갖 대책에도 실패를 거듭해온 부동산 문제의 해결은 그야말로 절실하다. 한국당 역시 국정농단 사태 이후 기나긴 늪에서 빠져나와 보수 대통합과 혁신에 성공해야 한다. 아울러 무조건 반대가 아닌 외연확대가 가능한 대안정당의 이미지도 구축해야 한다. 여야 모두 쉽지 않은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야당 복이 있을까? ‘대통령의 야당복’은 대통령으로서도, 야당으로서도 불명예다. 마찬가지로 ‘야당의 대통령복’이라는 표현이 나와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에게 대단히 치욕적인 표현이다. 여야가 서로의 자책골에 기대기보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룰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