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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공] 부처님이 바라보고 있는 저 산자락 위에 또 다른 부처님이 계십니다. 두 부처님은 천년 동안 서로를 그렇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리움이 사무쳐서 돌이 되었고, 바위가 되었습니다. 여기는 충청북도 월악산. 황량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미륵리사지 절터입니다. 옆에는 한국에서 가장 처음 개발된 온천 마을 수안보가 있습니다. 이번 주, 월악산으로 초대합니다.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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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한(恨), 그리고 미륵불
도선 국사가 이랬다지요. “월악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날 천지가 개벽하리라.” 그리고 세월이 지나니 예부터 ‘물막이골’이라 부르던 곳에 충주댐이 생기고, 지금 충주호에 산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천지 개벽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 개벽을 희구하는 사람들은 월악산 한가운데에 미륵불을 세워놓았습니다. 미륵불은 현세불인 석가모니에 이어 56억7000만년 후에 나타날 미래불입니다. 사람들은 그 돌부처가 마의태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마의태자 아시지요, 통일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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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亡國)의 왕자가 경주를 떠나 금강산으로 가던 길이었답니다. 그 도중에 이곳 월악산에 들러 절을 세우고 미륵불을 세웁니다. 전설은 그러합니다. 수안보에서 이정표를 따라 월악산국립공원으로 향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입장료를 내고서 들어갑니다. 제법 긴 오솔길 끝에 절터가 있습니다. 텅 빈 공간에는 바람만 쌓이는데, 메마른 풀밭이 소근댑니다. 저거 봐, 외로운 사람 또 왔다.
말 그대로 ‘절터’입니다. 탑 몇 개와 멀리 보이는 돌부처, 그게 전부입니다. 개울을 건너 돌부처를 향해 걸어갑니다. 등에 분명히 비석을 지고 있었을 거북이상이 반깁니다. 비석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정말 큽니다. 크다 함은 이 절의 후원자가 권력과 금력에 막강한 인물이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니 망해버린 나라의 왕자가 세웠다는 낭만적인 사연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리 믿기로 합니다. 진실과 사실이 언제나 똑 맞아떨어지지는 않으니까요.
미륵불 뵙는 길 조금 못 미쳐 개울가에 동그란 바윗돌이 하나 있습니다. 온달 장군이 가지고 놀던 공깃돌이랍니다. 온달은 이곳에서 금방인 단양 온달산성에서 전사했으니, 여기까지 장군의 전설이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정말 힘이 장사였던 모양입니다. 공깃돌이 어찌나 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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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리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에서 저 거대한 미륵불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거친 돌로 쌓아 만든 법당의 낯섦이 여행객을 긴장시킵니다. 경주 석굴암을 본떠 돌로 3면을 올리고 그 벽에 부처와 보살상을 모시는 자리를 뚫어놓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을 불상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서 있는 미륵불은 목 위와 그 아래가 재질이 다릅니다. 신비롭게도, 흰 재질의 불두(佛頭)는 이끼가 끼는 법이 없답니다. 황량함과 신비로움. 그렇기에 더욱 자신 속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여행지입니다.
절터에서 산 속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차도 지나갑니다. 미륵대원사라는 절이 나옵니다. 삼국유사에 이곳에 있었다고 소개되는 절 이름입니다. 그 사라진 절을 한 스님이 화강암 기둥 108개를 세워 복원하겠다고 원(願)을 낸 절입니다. 지금 서른 개 정도 만들었으니, 그 완성은 언제일까요. 무너진 절터와 천년을 뛰어넘는 치열한 맹세. 당신은 무엇을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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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새겨진 千年 그리움
덕주골에 차를 대놓고 산길에 접어듭니다. 굳센 시멘트로 포장해놓은, 편하되 운치는 없는 길을 2km 오릅니다. 길 끝에 있는 덕주사는 마의태자의 동생 덕주공주가 세웠다고 합니다. 원래 있던 월악사라는 절을 찾아온 공주가 불교에 귀의하면서 이름을 바꿨다고 하지요. 그 공주가 절에 있는 큰 바위에 불상을 새겨넣었으니, 바로 덕주사 마애불입니다. 사람들은 덕주공주 본인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합니다. 절은 6·25 전쟁 때 불타 사라졌지만, 대법당으로 쓰인 자리에 마애불이 천년 세월을 견디며 앉아 있습니다.
마애불이 바라보는 정면으로 산자락 속에 미륵불이 서 있습니다. 느껴지시나요, 오라버니가 만든 미륵불과 여동생이 만든 마애불이 천년 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퍼붓는 그리움이. 바위로 뒤덮인 월악산 그림자 속에는 그런 애잔함이 흐릅니다.
마애불을 알현하러 가는 시멘트길,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제법 등산이라도 한 듯 다리가 뻐근하고 등은 땀으로 범벅이 됩니다. 그럴 때 갈래길이 있습니다. 도로 끝 월악나루로 가서 충주호 유람선 타기, 아니면 길을 돌려 수안보로 가서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기. 저는 뒤쪽을 권합니다. 유람선도 좋지만, 건강이 우선! 유람선은 다음에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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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욕으로 끝맺는 그리움
수안보는 한집 건너 온천이고 한집 건너 음식점입니다. 충주시에서 관리하는 물을 나눠 쓰는 업소들이라 물 품질은 똑같습니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신설 업소를 찾으십시오. 수질이 똑같으니 시설 좋은 곳을 고르시면 됩니다. 웬만한 모텔, 여관에서도 객실에 온천수가 공급되니까 이산가족 되기 싫은 가족, 연인들께서는 모텔로 가시면 됩니다. 물론 프론트에 온천수 공급 여부 확인은 필수. 아 하나 더 있습니다. 수안보에 도착하면 주유소 건너편에 있는 관광안내센터를 꼭 들르세요. 정말 친절한 안내와 각종 할인 쿠폰에 감동 받습니다.
- 겨울날, 박종인 드림
::: 여행수첩
1.가는 길(서울 기준):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IC나 괴산IC에서 빠진다. 이후 ‘수안보’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수안보에 도착한 후 월악산 국립공원 이정표를 따라 가면 미륵리사지와 송계계곡, 덕주사를 찾을 수 있다.
2.묵을 곳:수안보 온천 홈페이지 www.suanbo.or.kr를 참고할 것. 상세한 설명이 나온다.
3.먹을 곳:온천거리 안에 있는 향나무식당(043-846-2813). 두 명이 가면 상 두개에도 다 못담을 정도로 많은 한정식을 낸다. 1만 원. 또 수안보 명물인 꿩 샤브샤브도 있다. 5만원(4인분). 만리식당도 단골이 많은 추천식당. 더덕요리와 꿩요리를 낸다. (043)846-3206.
4.충주호 유람선:월악나루에서 수시로 출발. 성인 1만원, 어린이 6000원. 운행시간은 문의할 것. 호수 주변을 샅샅이 유람하는 장기 코스도 있다. (043)422-1188, www.betaj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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