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이면 다 걷는 길… 종일 머물면 어떠하리

충북 괴산 각연사
  • 등록 2009-10-22 오후 12:00:00

    수정 2009-10-22 오후 12:00:00

[조선일보 제공] 각연사(覺淵寺) 가는 길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순전히 당신의 의지에 달려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신이 얼마나 걷고 싶은가에 따라 거리는 달라진다. 각연사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태정리, 칠보산과 보개산 사이 계곡에 끼어 있는 작은 산사(山寺)다. 큰길 옆에 있는 태성마을에서 약 4㎞ 그러니까 십리가량 들어간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노랫말에서 보듯, 옛날 사람들에게 십리는 휘파람 휙휙 불면서 걷는 거리였다. 하지만 자동차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 십리면 엄두도 내지 못할 먼 길일 수 있다.

십리쯤 시골 마을길과 산사 가는 숲길을 즐기고 싶다면 태성마을에 차를 세운다. 마을 뒤쪽 산 쪽으로 길이 딱 하나니 헷갈릴 게 없다. 차 한 대 지날 좁은 길이지만 시멘트 포장이 잘돼 있어서 한편 편리하고 한편 섭섭하다.

십리가 엄두도 내지 못할 먼 길 같다면 계속 차를 달린다. 마을 뒷길을 따라 차를 타고 가다가 도로공사가 한창인 지점에서 우회전,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 쭉 따라 운전한다.

2㎞ 좀 넘게 가면 허술한 집 서너 채가 보인다. 마을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작은 가옥 군락이다. 각연사와 태성마을 중간에 있다 하여 '중말'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화전민들이 꽤 많이 모여 살았다 한다. 여기 차를 세운다. 차 세울 공간이 매우 협소하니 웬만하면 태성마을에 주차하고 걷기를 권한다.

'미륵사'라는 표지판을 지나면 '각연사 전방 1.9㎞'라고 적힌 갈색 표지판이 보인다. 억새가 가을바람에 하들하들 몸을 떤다. 시멘트 다리를 건넌다. 여기서부터 산사 올라가는 길다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시멘트 포장이지만 호젓하다. 절까지 계곡을 따라 외길이다. 계곡 곳곳에 화강암의 일종인 청석이 보인다. 그래서 옛날부터 청석골이라 불렀다.

▲ 충북 괴산 각연사 비로전. 마을에서 절까지는 4㎞ 좀 넘는 짧은 거리이나, 호젓한 산길은 하루 종일이라도 걸을 듯하다. / 조선영상미디어


맑디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청석골 주변 곳곳에 갯버들과 달뿌리풀이 군락을 이뤘다. 가끔씩 풀섶에서 참새가 인기척에 놀라 푸드덕 하늘로 솟구친다. 30여 년 전 각연사에 계시던 노스님은 청동고리가 달린 지팡이(육환장)를 들고 다니셨다. 밤 짐승들이 놀라지 말라고 미리 짤랑짤랑 소리를 냈단다. 옷섶에 작은 방울이라도 매달 걸 그랬다.

산비탈을 따라 조성된 사과밭을 지나면 울창한 숲이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인 혼효림이다. 소나무가 능선 쪽으로 뒷걸음치고, 활엽수가 숲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참나무와 붉나무, 신나무, 복자기, 누리장나무, 당단풍, 서어나무, 밤나무, 층층나무, 왕버들이 보인다. 신나무가 단풍나무보다 붉다.

울창하다 못해 어두운 숲 사이로 각연사 일주문(一柱門)이 보인다. 사실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올라올 수도 있다. 7~8대 정도는 주차할 만한 공간이 일주문 옆으로 있다. 하지만 그럴 거면 뭣하러 걷겠다고 여기까지 왔는가.
 

산모퉁이를 돌면 각연사 기와지붕이 보인다. '졸졸' 흐르던 물살이 '좔좔' 정도로 시냇물 볼륨이 높아지는 것도 여기부터다. 개울 위로 놓인 시멘트 다리를 건넌다. 여태 걸어온 길도 그랬지만, 이 다리도 시멘트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더 운치 있었을까 아쉽다.

2㎞가 채 안 되는 숲길이 여기서 끝난다. 보통 사람이 1시간에 4㎞쯤 걷는다고 하면 30분이 채 걸리지 않아야 맞는다. 하지만 계곡 곳곳을 물들인 수려한 단풍에 홀딱 반해 걷다 보면 1시간도, 2시간도, 3시간도 걸릴 듯하다.

대웅전 옆 약수로 목을 축이고 각연사 여기저기를 둘러봤다. 예전보다 규모가 커졌다지만 여전히 아담하고 조용한 산 중 절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에 들어갔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보물 제433호 석불이다. 위엄 있고 거리감 느껴지기보다 푸근하고 친근해 보이는 얼굴이다. 비로전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역광을 받아 하얗고 환한 창살문 한가운데서 단풍잎이 발갛게 빛났다. 바깥 단풍나무 그림자려니 했다. 아니었다. 창살문에 한지를 바르면서, 누군가 단풍잎을 끼워 넣은 모양이다. 부처님도 단풍을 즐기시라는 배려 같았다.

▲ '괴강매운탕' 쏘가리 조림. / 조선영상미디어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증평IC-36번 국도-도안주유소 삼거리에서 우회전-34번 국도-괴산-쌍곡계곡 입구에서 직진-태성삼거리에서 우회전-태성마을-각연사

맛집 괴강에서 잡히는 민물고기로 만든 매운탕과 조림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괴강을 따라 여럿 있다. 이 중 '괴강매운탕'이 역사가 깊다. '민물생선의 왕'이라고 할 쏘가리를 강력 추천한다. 여유가 있다면 조림을 권한다. 기다리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짭짤하고 달착지근하고 구수한 국물이 쏘가리의 탄탄하고 감칠맛 넘치는 고기맛을 제대로 살려준다. 어쩌면 조림 국물 담뿍 밴 시래기와 수제비가 더 맛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쏘가리 조림·매운탕 5만·6만5000·8만원, 빠가사리 매운탕 3만·4만·5만원, 잡고기 매운탕 2만5000·3만5000·4만5000원. 충북 괴산군 괴산읍 대덕리93 (043)832-2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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