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눈부신 봄날이 축복이다

  • 등록 2014-04-04 오전 9:34:16

    수정 2014-04-04 오전 9:34:16

4월인 요즘, 서울 남산 산책로엔 벚꽃들이 활짝 피었다. 목멱산방을 시작으로 시인 조지훈의 시비를 지나 국립극장까지 3Km남짓한 거리를 걷다보면 눈이 즐겹다. 한눈에 들어온 서울 도심의 모습은 덤이다. 온 천지가 꽃들이다. 길 한쪽을 도열해 있는 화사한 벚꽃을 비롯해 백목련, 분홍색의 진달래, 노랑 개나리가 경쟁하듯 지천에 널려있다. 예년 같으면 순차적으로 필 꽃들이 한꺼번에 피었다. 고온 때문이다. 자연 상태계가 붕괴돼 혼란스럽다는 걱정이 있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은 더 없이 좋기만 하다.

남산 산책로를 걸었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이마에 벌써 땀이 송글송글 맺었다. 때 마침 봄바람이 분다. 그 바람이 양쪽 겨드랑이에 들어와 간지럼을 태우고 빠져 나간다. 시원하고 상쾌하다. 미세먼지도 황사도 없어 더 좋다. 파란 하늘을 본지가 얼마 만인가. 흰 구름도 뭉게뭉게 피었다.

걷는 이들의 표정들이 밝아 덩달아 좋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얘기하면 걷는 풍경이 정겹다.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눈 보호와 미용을 생각해서다. 젊은 여자들의 치마는 더 짧아졌고 반차림도 많아졌다. 성큼 여름이 온 것 같다. 외국 관광객도 눈에 많이 띤다. 다들 여유롭고 풍요롭기만하다. 외국 영화속 한 장면 같다.

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낙엽이 지는 가을보다도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기가 요즘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신비함이 경이롭다. 그래서 일까. 봄을 찬미하는 노래와 축제, 그림이 부지기수다. 봄은 겨울이 있었기에 봄답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 뒤에 오는 계절이기에 따뜻함이, 싱그러움이 감사하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지난 겨울의 기억조차 감쪽같이 지워버릴 만큼 봄은 화려하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되고 봄날이 가면 여름 가을이 오는 계절의 변함없는 순환은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들에겐 더없는 선물이다. 그래서 메마른 불모의 대지가 한순간에 눈부신 꽃들과 초록으로 뒤덮이는 이 봄의 기적 앞에서 너나없이 우리 모두는 경이와 감동에 젖는다. 이같은 자연의 섭리를 통해 우리네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4월이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박목월 시인의 ‘사월의 노래’ 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가적인 풍경을 멀리하고 배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나그네의 심정이 읽혀진다. 4월은 빛나는 꿈이지만 눈물 가득한 무지개이기도 하다는 시인의 마음은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영국 시인 T.S 엘리엇역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며 추억과 욕망들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키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하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길러주었다’라며 4월을 ‘잔인한 달’로 노래했다. 엘리엇은 얼어붙은 땅을 뚫고 새싹이 돋아나는 4월을 역설적으로 고통의 달로 묘사했다. 엘리엇은 탄생 속에 죽음이 있고, 그 죽음 속에 생명이 잉태한다는 동양의 윤회사상을 노래하려는 듯 하다.

봄날은 찬란하지만 쉽게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듯 한 순간 휙 가는 것이 봄이다. 이번 주말엔 기온이 떨어져 쌀쌀하다고 한다. 그래 봤자 기온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선 흰 눈까지 온다고 하니 눈꽃까지 볼수 있을 것 같다. 이래 저래 4월은 꽃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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