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베네수엘라 남부 바리나스주 사바네타에서 출생한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볼리바르 혁명운동 200’을 결성했다. 이후 공수부대 중령이었던 차베스는 37세에 쿠데타를 감행했지만 실패해 2년간 감옥에 수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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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는 1998년 국민앞에 반체제, 반부패 정책을 약속하면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을 앞세워 55%가 넘는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어 그는 2000년 신헌법체제에서 치러진 첫 대선에서도 6년 임기의 대통령에 당선된다. 2002년에는 반대파의 쿠데타로 47시간 동안 실각에 처했지만 군부가 다시 차베스 편으로 돌아서면서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이처럼 그는 종신 대통령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빈민층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2006년 3선에 이어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도 4선에 성공했다.
그는 또 베네수엘라 수출액의 80%를 차지하는 석유를 이용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등 빈민층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그는 반미의 대표적 지도자로 자리를 굳히면서 서방국들로부터 비난을 받아왔다.
차베스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유세 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하에 진행되던 정책의 시행을 거부해 국제 금융계 및 재계에 불안감을 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외국 투자가들은 베네수엘라에서 떠나 베네수엘라 경기는 지난 1998년부터 위축됐다. 이에 차베스는 미국, 유럽 및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순방하며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 쇄신을 위해 노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