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세습 왕조인 김 패밀리의 일원으로 고영희의 활동 모습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이니치신문이 입수한 약 1시간30분짜리 영상의 제목은 '위대한 선군(先軍) 조선의 어머님'으로 1980∼90년대를 중심으로 촬영된 고영희의 활동 모습이 수록됐다.
영상은 김 제1위원장이 어린 시절 그림 그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모습, 김 국방위원장의 신변 보호를 위해 권총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 김 국방위원장의 야전 점퍼를 손질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기록 영상은 내레이션에서 고영희를 "불세출의 선군 영장(靈將)인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의 가장 귀중한 혁명 동지"라고 소개했으며, "선군의 우리 조국과 김일성 민족을 위해 하늘이 보낸 분" 등으로 거듭 신격화했다.
또 고영희를 김일성 주석의 모친인 강반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친인 김정숙에 이어 최고지도자의 '위대한 모친'의 계보에 올렸으며 "(2명의 위대한 모친을) 숭고한 모범, 생활의 거울로 삼아 장군님(김정일)에게 애정과 충성을 다한 어머님'으로 치켜세웠다.
영상은 고영희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수십 수백만의 기아자가 발생한 1990년 후반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서 그를 지탱했으며 병사들의 식기를 개발하고, 비싼 음식재료를 사용하지 않고도 병사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식사 메뉴를 고안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는 수년 전 중단된 고영희에 대한 신격화 작업이 재개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한 작년 가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재편집한 영상이다.
이 영상은 지난달 이후 조선인민군의 중견 간부 등에게 공개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희는 1960년대 초반 귀환사업으로 북한에 들어간 재일 조선인 출신으로 지금까지 북한의 공식 보도에 등장한 적이 없다.
일본 출신이라는 경력이 최고지도자의 모친으로 '부적격'하다는 북한 지도부의 판단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서도 고영희의 이름과 경력 등은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산케이신문은 최근 일본 내 단체인 '구출하자! 북한 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를 인용해 북한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모를 고영희가 아닌 '리은실'이라고 지칭한 기록영화가 상영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번에 고영희의 영상 자료가 배포된 것은 지난 4월 김정은이 조선노동당과 국방위원회의 최고 포스트에 오르면서, 최고지도자로 지위가 확정된 이상 생모인 고영희의 존재를 애매한 상태로 둬서는 안 된다고 지도부가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고영희의 탄생일(6월 26일)을 맞아 신격화 작업이 가속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경력이 정리돼 공표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북한은 지난 2002년 고영희에 대한 신격화 작업을 조선인민군을 중심으로 시작했으나 2004년 그녀가 사망하면서 일반 주민에게 침투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단됐으며, 2008년에도 조선노동당 예술부문에서 고영희를 숭배하는 노래가 만들어지는 등 움직임이 있었으나 당 상층부의 지시로 취소됐다.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인 고영희(1953년생)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0년대 초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건너간 재일교포 출신으로 만수대예술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했으며, 1970년대 중반 김 위원장의 눈에 들어 동거를 시작해 2004년 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줄곧 김 위원장과 함께 살았다.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두 아들 정은과 정철, 딸 여정을 낳았고, 김정일의 총애를 받아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서 자리를 굳혔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