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벼락출세했습니다. 정치입문과 동시에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쓰라린 실패를 겪은 뒤 재기를 노리고 있습니다. 낡은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문재인은 친노패권, 강경파, 호남홀대, 확장성 부족의 이미지가 따라다닙니다. 안철수 역시 우유부단, 뒷북, 철수정치, 제3당 한계론 등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문재인과 안철수. 대권으로 가는 중대 분수령에 서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5%입니다. 레임덕을 넘어 식물 대통령입니다. 거리에는 탄핵과 하야를 외치는 촛불민심이 넘쳐납니다. 대통령 자진사퇴·하야 여론은 60% 이상입니다. 두 사람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문제인식과 해법은 거의 유사합니다. 해법은 공동적으로 ‘박근혜 퇴진’인데 구체적 표현이 다릅니다. 문재인은 ‘2선 후퇴’, 안철수는 ‘하야’입니다. 문재인은 부드러움을 선택했습니다. 책임있는 정치인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신중한 모습입니다. 안철수는 이른바 강철수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당연한 수순입니다. 기존 이미지의 약점을 보완하는 승부수입니다. 다만 두 사람의 모험적 시도는 향후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중 또 신중’ 문재인, 왜 하야를 언급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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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여러 차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국회 추천 국무총리와 거국중립내각에 대통령 권력 이양 △내치는 물론 외교·안보 권한 모두 이양 △대통령 2선 후퇴 △거국중립내각의 차기 정부 출범 때까지 과도내각 역할 보장 등이 문재인이 사태해결의 방안으로 제시한 로드맵입니다.
문재인의 태도는 표면적으로 성공적입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지지율 1위로 올라섰습니다. 내용적으로는 평가할 게 없습니다. 반기문의 지지율 폭락에 따른 반사효과이기 때문입니다. 최순실 정국에서 소폭 반등했지만 문재인의 지지율은 사실 제자리 수준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이재명의 상승세는 눈에 띕니다. 어느새 마의 5% 벽을 돌파하더니 10% 안팎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탄핵·하야, 대통령 구속수사 등 야권 지지층이 가장 원하는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문재인의 태도는 다소 답답합니다. 최순실 파문과 박근혜 퇴진 정국에서 너무 신중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민주당의 지지율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을 더블스코어 수준으로 앞선 것은 물론 대구경북에서마저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의 지지율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물론 문재인도 ‘중대결심’을 몇 차례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하야’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야권 지지층 대다수는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문재인과 달리 안철수, 박원순, 이재명 등 다른 차기 주자들은 분명하게 하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재인이 ‘하야’라는 표현을 거론하지 않는 것은 대통령이 수용할 가능성이 없는 데다 하야 이후 정치적 논란과 국정공백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당장의 이익을 탐하기보다는 책임있는 정치인의 모습에 더 무게를 두는 모습입니다. 문재인은 9일 시민단체 관계자들과의 회동에서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은 매우 길고 어려운 투쟁이다. 6월 항쟁을 보더라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헌 조치 이후 아주 길고 긴 투쟁 끝에 승리할 수 있었다”면서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과 공권력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 하야가 이뤄진다 해도 그 이후의 정치적 논란이나 국정 공백도 가늠하기 어렵다”고 우려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강력 또 강력’ 안철수, 왜 하야를 주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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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11월 2일 청와대의 김병준 총리 지명 직후 국회 정론관을 찾았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마이크를 잡고는 대통령 하야를 공식 요구했습니다. 이후 안철수의 행보는 강력함 그 자체입니다. 9일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대통령 퇴진에 대한 뜻을 모았습니다. 10일에는 서울 홍대 입구 역에서 젋은층과 만나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거리서명에도 나섰습니다. 11일에는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직장인들과 만나 대통령 퇴진을 위한 거리서명에 나섰습니다.
안철수는 최순실 정국에서 이미지의 대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안철수는 그동안 주요 정치적 고비 때마다 전략적 후퇴를 선택, 이른바 ‘철수정치’라는 조롱에 시달렸습니다. 이번만큼은 달라 보입니다. 미증유의 국가적 혼란 속에서 대통령 하야라는 분명한 깃발을 들고 “나를 따르라”를 외치고 있습니다. 정말 안철수의 모습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파격적입니다. 과거 우유부단하고 유약했던 이미지를 완전히 벗은 모습입니다. 안철수의 인식은 “빠른 수습과 빠른 혼란 정리를 위해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게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이라는 점입니다. 또 “지금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이 물러나는 것”이라면서 “그리고 그 이후 질서 있게 헌법과 규정대로 많은 일들을 하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반의 오래된 인식과는 달리 안철수의 정치역정은 결단의 연속이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탈당과 국민의당 창당이라는 고비를 겪었습니다. 열매를 달콤했습니다. 교섭단체 두 배 수준인 38석의 원내정당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20대 총선 이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는 지지율 20%를 넘어서면서 문재인을 제치고 차기 지지율 1위에도 올랐습니다. 그러나 반기문의 등장으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파동까지 겹치면서 지지율이 10%대 후반, 중반으로 하락하더니 10% 안팎의 박스권에 고정됐습니다.
◇문재인 vs 안철수의 해법…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리다’
문재인과 안철수. 최순실 정국에서 두 사람이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도 야권 지지층의 파이가 그렇게 커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이없는 최순실 정국은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박근혜가 아니라 최순실이었다”는 한탄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권선징악적 스토리라는 점에서 대통령에 실망한 여론은 야권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소폭 반등은 있을 뿐 그러한 경향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20대 총선 당시 여야 정당의 득표율은 새누리당 33.50%, 민주당 25.54%, 국민의당 26.74%, 정의당 7.23%입니다. 야3당의 지지율 합은 60%입니다. 그러나 최근 야3당의 지지율 합은 50% 안팎에 불과합니다. 리얼미터의 11월 2주차 주중집계에서는 민주당 32.2%, 새누리당 19.9% 국민의당 14.8% 정의당 6.2%, 부동층 21.5%로 각각 나타났습니다. 한국갤럽의 11월 2주차 주간집계에서는 민주당 31%, 새누리당 17%, 국민의당 13%, 정의당 6%, ‘없음·의견유보’ 32%로 나타났습니다.
당정청 전반의 최근 상황이 20대 총선 때와는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점에서 여권에서 이탈한 여론은 야권이 아닌 부동층이나 무당층으로 이동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다시 말해 최순실 정국 이후 여권이 쇄신국면을 거쳐 재탄생할 경우 부동층은 또다시 야권이 아닌 여권을 선택할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쉽게 말하면 대통령도 너무 싫지만 야당을 흔쾌히 대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정서입니다.
12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는 최대 백만촛불이 타오를 것입니다. 차기 대권의 최대 분수령입니다. 국민 모두가 “대통령은 이제 끝났다”고 이야기합니다. 남은 것은 ‘포스트 박근혜’로 가는 절차와 방식의 문제입니다. 신중을 기하고 있는 문재인은 좌고우면인가요 아니면 책임있는 정치인의 모습인가요? 투사로 변신한 안철수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인가요 아니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나요?
둘 다 정답일 수는 없습니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영화 제목처럼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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