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명품사냥 나선 면세점, 한겨울에도 봄을 볼 줄 알아야

  • 등록 2015-12-17 오전 7:54:55

    수정 2015-12-17 오전 7:54:55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명품은 없습니다.”

오는 2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시내 면세점을 여는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027390) 관계자의 말이다. 한화는 1차 개점을 앞두고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향후 면세점 운영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한화와 함께 서울시내 신규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HDC신라면세점은 24일 임시 개점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업권을 따낸 만큼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것인가에 관심이 쏠린다.

그 경쟁력을 판단하는 첫 번째 기준은 ‘명품’이 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하면 신규 면세점은 두 곳 모두 100점 만점에 0점이다. 아직 문을 열어 차려진 밥상을 내보이진 않았으나 밥상에 대한 반응은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는 듯하다. 손님이 좋아하는 고기반찬이 없는데 이것도 밥상이라고 차려냈느냐고 타박할 게 뻔하다. 고기반찬을 내기까지 고기를 잡아 손질하고 요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더욱 큰 문제는 잡을 고기가 몇 안 된다는데 있다. 최근 서울시내 면세점 재승인 심사에서 기존 사업자를 제치고 새롭게 사업권을 따낸 신세계와 두산까지 가세해 명품 사냥에 나선 기업은 곱절로 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국가별로 매장수를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진 ‘3대 명품’ 루이비통과 샤넬, 에르메스가 모두 입점한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사업권을 놓치며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겼다.

하지만 일각에선 또 다른 의미로 “명품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매장 수에 제한은 있어도 반드시 최대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는 상황에서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신규 개점을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과거 롯데, 신세계 등 유명 백화점이 해외 명품 업체에 과도하게 저자세를 취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해외명품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파격적으로 낮춰주고 인테리어 비용까지 제공하는 굴욕적인 협상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반대로 지난 9월에는 프랑스 명품 업체인 샤넬이 30여 평의 화장품 단독 매장을 달라고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발을 빼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갑’과 ‘을’의 위치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지금의 신규 면세점과 명품을 놓고 보면 명품이 갑이다. 하나의 브랜드를 놓고 대기업만 최소 네 곳이 동시에 애정공세를 펼치니 콧대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좋은 자리, 넓은 매장은 기본 옵션으로 통할 정도다.

그렇다고 명품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면세점 전체 매출에서 3대 명품이 차지하는 비중만 1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절대적인 핵심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서울 광장동에 있는 워커힐면세점은 3대 명품 없이 영업을 했고, 저조한 매출에 발목이 잡혀 23년 만에 사업권을 박탈당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에는 최소 8개월에서 10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업체들은 내년 중반, 늦어도 하반기 정도에는 명품 브랜드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당장 명품 유치만으로 신규 면세점을 평가하는 것은 섣부르다. 업체들도 ‘정식 개장’이 아닌 ‘가 오픈’이라며 준비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명품이 없다면 그에 버금가는 다른 가치라도 제공해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버텨야하지 않겠는가. 겨울철 사냥에 목을 맬 필요는 없지만 한겨울에도 봄을 볼 줄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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