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악 하늘길 ‘김신조 루트’

발길 닿는 곳마다 ‘환상 조망’…산소 가득 ‘도심 속 오아시스’
  • 등록 2010-03-10 오전 11:38:00

    수정 2010-03-10 오전 11:38:00

[경향닷컴 제공] 서울에서 봄나들이 갈 만한 곳을 고민하던 중 서울 성북구가 ‘북악하늘길’에 3산책로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개방한 950m 길이의 2산책로에 이어 추가로 640m의 산책로를 연 것. 2·3 산책로는 일명 ‘김신조 루트’다. 1968년 북한 공작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할 때 온 군사 통로. 북한 개성에서 시작해 임진강을 거쳐 파평산, 삼봉산, 우이령, 북악산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우이령과 북악산 자락의 김신조 루트가 사건 이후 처음 개방됐다.

▲ 서울 북악산 ‘김신조 루트’의 압권은 북악산을 파노라마처럼 둘러싼 서울 도심과 부도심의 풍광이다.

인왕산 산책로는 수도 없이 다녔는데, 북악하늘길은 처음이다. 지난해 금기의 땅에 가고픈 마음이 생겼지만 신분증 지참 같은 번거로운 과정과 군사 통제 지역이란 점이 걸렸다. 성북구청에 문의했더니 ‘김신조 루트’엔 신분증이고 뭐고 필요 없단다. 출발 장소를 성균관대 후문 근처 와룡공원으로 잡았다. 여기서 말바위쉼터로 올라가 숙정문안내소를 거쳐 성북천발원지(지도 참조)에서 ‘김신조 루트’를 밟을 요량이었다.

여행길엔 이런저런 일이 있게 마련. 일요일(7일) 오전 말바위쉼터에 이르자 안내소 문이 잠겨 있다. 입장 시간은 오전 10시인데, 30분 일찍 도착한 것. 기다리던 중 수십명이 우르르 패찰과 기념품을 받으며 무사 통과한다. 청와대 홍보수석실 직원들이라고 한다. 몇몇 시민들이 ‘규정과 원칙’이 뭐냐며 항의한다. 사무소 직원은 “VIP들은 특별 탐방을 신청하면 (시간 외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교훈은 2가지. 서울성곽길 탐방엔 신분증 지참이 필수라는 것, 또 VIP들이 오는 시간은 피해야 한다는 것. 아니면 VIP가 되거나. 4월부터는 개방 시간이 오전 9시부터니 조금 일찍 가도 좋을 듯하다.

숙정문안내소에 패찰을 반납하고 성북천발원지로 가 본격 탐방에 들어갔다. ‘김신조 루트’의 압권은 조망인 것 같다. 2산책로의 서마루-계곡마루-남마루-하늘전망대나 3산책로의 동마루, 숲속다리 전망대에선 남산, 청계산, 관악산뿐만 아니라 평창동, 북악스카이웨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전망대마다 서울의 경관이 제각각 매력을 뿜어낸다. 3산책로 끝 부분에 새로 만든 ‘숲길다리’ 위에서 사진도 찍고 북악스카이웨이를 살펴볼 만도 하다.
 

서울의 ‘비무장지대’라 불릴 정도로 숲이 잘 보존됐다. 도심과 확연히 다른 맑은 공기가 코끝으로 느껴진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도 많아 아쉬웠는데, 완연한 봄이 오면 꼭 다시 와야지 하는 마음이 든다. 전반적으로 북한산 등산로보다는 덜 가파르고, 인왕산 산책로보다는 오르막 내리막이 많다.

단점은 중간 중간 군사작전용으로 만든 좁다란 시멘트 계단이 많다는 점. 한두 시간 걷다 보니 무릎에 약간 무리가 오는 듯했다. 성북구는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늘전망대에서 ‘바른걷기 강습’을 한다. 강사들이 ‘비탈길을 오르내릴 때에도 항상 발뒤꿈치부터 착지’ ‘두 무릎을 쭉 펴고 걷기’ 같은 유의사항을 담은 안내문을 나눠줬다.

남마루와 동마루 사이 호경암은 68년 총격전이 벌어졌던 곳. 50여개의 탄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북괴의 잔악성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려는 목적으로 표지를 세웠다는 안내문이 나온다. 군대 시절 기억을 되살리려 올라온 건 아니었건만, 여러 군사시설이나 벙커니 시멘트 계단을 보며 옛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숲길엔 ‘모더니즘 계열 시’로 무작정 외운,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 시비도 서 있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고교 졸업하고 나서는 처음 읽었다. 시인은 요즘의 재개발을 예견한 듯하다. 그래서 문명 비판이고, 모더니즘이란 걸 십수 년만에야 깨달으며 산을 내려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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